강천산에 반하다/정현숙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에 위치한군립공원 강천산 계곡의맑은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지두 마리 용이 꼬리를 치며승천하는 형상이어서용천산이라고도 불렸다던가바위 병풍을 둘러친 듯한기암괴석들의 위용 넘치는 모습과수려한 산세만으로도아름다운 판타지 세상인데때맞춰 만개한 산벚꽃과때아닌 애기단풍 환영 인사에잠자던 감성 에너지 절로 폭발하고맨발 걷기에도 좋은흙길로 된 가파르지 않은산책로를 따라서 걸어갈 때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하여갖가지 나무와 풀에서 나는숲속 자연의 그 싱그러운 향취란취하지 않으면 반칙인
봄날의 사색/정현숙감당하기 벅찬 감격의 순간보다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란 걸 알았네허둥지둥 헤매었던 나날들이일장춘몽 호접지몽 같아라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처럼쫄랑쫄랑 흘러가면 편한 것을바람따라 떠다니는 구름처럼유유히 따라가면 되는 것을세상살이 어차피희로애락과 동행해야 한다면고해니 고독이니 괴로워 말고그냥저냥 살다보면 살아지지얽히고설켰던 복잡한 생각들이 따사로운 봄볕에보드라운 봄바람에살살 녹아내리고 술술 풀어지네
봄꽃 필 즈음이면/정현숙봄물이 번지고 있다산색이 변하고 있다암울하던 꽃나무에도서광이 비치고 있다봄꽃 필 즈음이면진 줄 알았던 그리움도몽글몽글 피어나다시 기승을 부린다환절기 감기몸살 앓듯한차례 앓고 나면안달 난 꽃들은저마다 멋내기 바쁠테지소생하는 연둣빛 새잎이뿅뿅 터질 듯한 꽃눈이신통하고 기특해서찡한 감격 주체하기 벅차다
나잇값/정현숙유치찬란하다는 둥주책바가지라는 둥나잇값 못한다고핀잔 주지 마오더하고 싶어서 더한나이도 아니고올리고 싶어서 올린나이값도 아니라오천하장사 보다 힘센세월 등쌀에어쩔 수 없이꾸역꾸역 먹게 되었다오그 무게에 짓눌려늘어난 건 주름살 뿐벼슬도 훈장도 아니면서마냥 짐스럽기만 하다오
봄, 봄이다/정현숙벙긋벙긋새꽃 피워 물고곱게 치장한 나무그윽히 날리는 향기봄, 봄이다예쁜 봄이다말갛게 열린 하늘반짝이는 햇살심술쟁이 바람도꽃소식 물고 씽씽봄, 봄이다싱그러운 봄이다
경칩驚蟄/정현숙봄바람 들쑤심을 견디지 못해떠밀려 나간 개울가에서눈꺼풀 밀어올리고뽀송뽀송 고개 쳐든 버들개지랑칩거생활 청산하고바깥으로 튀어나온 개구리와 조우했네그 옆엔 웃음 헤픈 개나리도 있었네참으로 신통방통 하여라초면인데 생경하지가 않은익숙한 만남이었네짧지만 행복했던 경칩 날의 꿈이었네
3월/정현숙야리야리한 새순이 돋는돌돌 경쾌한 물소리가 들리는굳어있던 땅이 꿈틀대는잠잠하던 주변이 수런대는3월이다 기다림과 고독으로지난한 시간을 보낸 꽃나무는쏙쏙 꽃물 길어 올리며소생을 꿈꾸는데역풍도 회오리바람도 아닌잎샘바람 꽃샘바람 장난질에마음 홀린 나만어질어질 휘청거리는 3월이다
立春/정현숙다시 시작이다시작은 늘 새롭다기세등등하던 동장군도부지런한 시간을더 이상 당해낼 재간이 없어꼬리 내릴 준비를 하고아롱아롱 피어나는 아지랑이보이는 듯 보이는 듯생강나무 꽃망울 터지는 소리들리는 듯 들리는 듯한결 다정해진 햇빛은간질간질 설렘을 부추기는데쌩하니 스쳐가는 바람에아직은 코끝이 맵다
화양연화/정현숙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자꾸 신경 쓰이는 날창밖에선 풀풀흰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나에게 가장 빛나던 시절은언제였던가아니, 있기나 했었던가추억은 늘 달콤 씁쓸하다시간은 앞만 보며 내달리는데나 혼자 뒷걸음질 치는 건지반환점 없는 인생이사무치게 안타깝고 슬프다절망의 늪에서도희망의 새싹이 움트고황량한 세상살이에서도황홀한 사랑이 피어나듯나이답게 살다보면아름다운 생을 찬미할그런 날 또 다시 오려나영화 같은 기적은 일어나려나
복수초/정현숙꽁꽁 얼어붙은얼음 땅 비집고 올라와천연스럽게 미소 짓는경이로운 생명이여무슨 기쁜 소식 전하러칼바람 부는 엄동에겁도 없이 피어났을까봄은 아직 멀리 있는데어쩌면침침한 세상 밝히려고동면에 빠진 세상 깨우려고지상에 떠오른 별인지도 몰라
내일 또 내일/정현숙오늘 하루가잰걸음으로 가버렸다추위에 갇혀 함께 못한 채무상무념 떠나 보내 미안하다누구에게나 공평하게주어지는 하루하루를듬성듬성 성기게 시침질하듯지내는 사람도 있을 테고드문드문 적당히 홈질하듯지내는 사람도 있을 테고한땀한땀 촘촘히 박음질하듯지내는 사람도 있으리라지상에서 단 하루를 살기 위해1,000일을 물속에서 준비하고25번이나 허물벗기를 한다는하루살이를 생각하니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가멀거니 보낸 오늘 하루가마냥 아깝고 부끄럽다그래도 별 탈 없었던오늘 하루에 기꺼이 감사하며나에게 주어질 또 다른 하루들이무
나무처럼/정현숙붙잡을 수 없는 시간그 시간이 남긴 흔적은정물화처럼 제자리에 있는데나이의 무게가 더해지는 만큼삶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으나빛나는 태양을 향하여푸르른 하늘을 향하여묵묵히 한곳을 바라보며묵묵히 한곳을 지키며서 있는 나무처럼살랑살랑 흔들릴 때도 있고흔들흔들 흔들릴 때도 있고휘청휘청 흔들릴 때도 있지만쓰러지지 않으려버티고 있는 나무처럼사는 일이 험난하고세상이 각박해도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니다들 그렇게 그렇게 살아낸다니버겁더라도 힘을 내야지, 나무처럼
눈꽃/정현숙고요히 침묵하는 고즈넉한 계절에귀한 손님처럼 찾아온 반가운 꽃치장하지 않은 그대로의 풍경에튀지 않고 수수해서 오히려 눈부신 꽃심연에서 길어올린 맑고 고운 언어 중어떤 표현이 어울릴까 고민하게 하는 꽃추위 속에서도 꽃봉오리 키우느라애쓰고 있는 봄꽃에게 용기를 주는 꽃황량한 겨울이지만 고난한 겨울이지만그래도 지치지 말라고 희망을 주는 꽃
새해 새 아침/정현숙기다리지 않아도밀어내지 않아도저 혼자 뜨고지는 해가거룩하게 보이는 아침찬물로 세수하고매무새 가다듬고길한 기운 충만하길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아무도 밟지 않은순백의 눈길 위에첫발을 내딛듯이초심불망 다지는 아침까치 소리 반갑고바람 소리 새로워설렘으로 떨리는싱그러운 새해 새 아침
송년/정현숙하루하루는 종종걸음으로 걷는 것 같은데한 주일은 달려온 것 같고한 달은 멀리뛰기 한 것 같고한 해는 날아온 것 같네이래서 한 세상 살고 나선쏜살 같았다 하는가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세월남는 건 기억 뿐이다지구의 맥박이 멈추지 않는 한소멸과 생성도 멈추지 않겠지만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나니슬프게도 영원한 것은 없나니한 해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다바통을 넘겨받으러 새해가 기다리고 있다거스를 수 없다면 따라가자어차피 잠시 머물다 갈 통과의례라면
겨울나무/정현숙보일듯 말듯속살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은근한 매력에 끌릴 때도 있지만민낯 그대로를 보여주는용기있는 자신감에 반할 때도 있지이파리도 열매도 떨궈낸 채가리거나 숨김이 없이맨가지로 당당하게 서있는 나목이눈길을 붙잡는 오늘처럼
겨울밤/정현숙사방이 꽁꽁 얼어붙어 고요합니다고요에 갇히니 생각이 맑아집니다홀로 구름 위를 산책하는 것 같습니다일상에서의 일탈처럼 달콤한 휴식입니다쉼이 없는 삶, 언저리만 맴돌다비로소 나와 만나는 시간입니다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펼치게 되는욕심도 노여움도 사라지게 만드는착한 밤입니다아파트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초조함과 긴장감을 녹여주는따뜻한 밤입니다
12월은/정현숙하늘이 온통 회색빛이다이파리 우수수 털어낸 나무는앙상한 추위 속에서 내공을 쌓고 있다이런 날,누군가는 털실로 뜨개질을 하며함박눈을 기다리고또 누군가는 패치카에 장작불을 피워놓고불멍을 즐길 지도 모를 일이다욕심 다 털어버려 바라는 것 없다면서도다가오는 신년의 운세 사이트를 들락거리며나처럼 기적 같은 행운을 꿈꾸는 이도 있으리라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새로운 길이 보이듯12월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고 설렘이다주전자에서 보글보글 끓는 찻물 소리에텅 빈 쓸쓸함이 사르르 녹아 내린다
가수 나훈아는 홍시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불렀다.‘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중략)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 때문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홍시는 즐겨 먹던 간식이었다. 손님이 오시면 어머니는 홍시를 꺼내 손님 대접을 하셨다. 감도 여러 종류가 있어 단감은 단단하고 아삭한 맛으로 먹는다. 단감이 무르면 맛이 밍밍해져 오히려 맛을 잃게 된다. 곶감은 껍
가을 국화/정현숙밤새 내린 찬 이슬에도매무새 흐트러짐 없이깊고 진한 향기로다가오는 꽃스산한조락의 계절에 피어나따스하게 반기며밝은 위안을 주는 꽃드러나는 화려함 보다고결한 기품 덕에사군자 한자리를당당하게 차지한 꽃성숙을 위해때론 시련도 필요하다며눈가를 촉촉이 적시는사랑스런 여인을 닮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