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세부터 98세까지 전국 각지에서 투고된 5,800여 편의 응모작 중에서 엄선 ★동행 - 성백광 아내의 닳은 손등을 오긋이 쥐고 걸었다옛날엔 캠퍼스 커플지금은 복지관 커플 ★봄날 - 김행선죽음의 길은 멀고도 가깝다어머니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나를 돌아본다아!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 ★ 봄맞이 - 김남희이제는 여자도 아니라 말하면서도봄이 되면 빛고운 새 립스틱 하나 사 들고거울 앞에서 가슴 설레네 ★로맨스 그레이 - 정인숙복지관 댄스 교실짝궁 손 터치에 발그레 홍당무꽃★ 절친 - 이상훈잘 노는 친구 잘
정발산 놀이터 박 종 명아이는 혼자 놀고유모차에는 강아지 두 마리아이의 재롱 소리 들리지 않고점점 커지는 놀이터혼자 타는 시소녹슨 미끄럼틀그네를 미는 바람결아이들 웃음소리저녁 먹으라는 엄마 목소리
여든 해를 넘기고도아직 나궁금한 것이 많아서 하늘의 뜻을하늘에 맡기지 못하고땅의 일을땅에 내려놓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여 여든 해를 넘기고도아직 나뜨거움 다 식지 않아서 떨리는 살잠재우지 못하고울렁이는 피다스리지 못하는 부끄러움이여 저 멀리 겨울산뼈로 서거라이제는 곧은 뼈로 서거라아아한 돌기둥 내보이는데 어쩔거나오늘도 나는폭삭 흙으로 무너지느니.
인왕산 자락에서 소년을 만나다.겨울에 내리는 빗 속에서 그가 노래한다. 소년은 단풍잎 같은 가을이라고 했다.슬픈 가을봄을 마련한 가을이라 했다.꿈의 가을 그 밤청운동가압장의 빠른 물살 위로황량한 내 영혼 위로 십자가를 보다그는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새 길을 준비하는 물동이를 채우는 소년 별헤는 사람.맑은 강물 같은 순이를 그리는소년. 겨울 비에 만난봄의 전령아름다운 사람가물에 콩싹 같은 이. (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온 후)
나이 들수록 /홍해리눈이 침침해지고귀가 희미해져도,보이는 것이 더 많고들리는 것이 더 많네.둔해지는 몸으로느끼는 것이 더 많은,이 투명한 세상!살아 있다는단순한,이기쁨
어처구니 /이덕규이른 봄날이었습니다마늘밭에 덮어 놓았던 비닐을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거기, 아주 예민한 숫처녀 성감대 같은노란 마늘 싹들이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갑자기 순끝이 후끈거려서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있는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아 글쎄 탱탱한 알몸이 그 잡년이요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단번에 앵겨붙는 것이었습니다어쩝니까 벌건 대낮에한바탕 잘 젖었다 싶었는데요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손
불을 끄고 방 안에 누워 있었다누군가 창문을 잠시 두드리고 가는 것이었다이 밤에 불빛이 없는 창문을두드리게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끼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이웃이거니 생각하고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이곳이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 또한 씁쓸한 것이어서짐을 들이고 정리하면서바닥에 발견한 새까만 손톱 발톱 조각들을한참 만지작거리곤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나는 바닥에서 잔다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내가 널 어떻게 나았는데......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나는 바닥이 편하다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한국의 대 유럽 경제 정책을 공부하거나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굽은 허리가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바짝 벽에 붙어선다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차가 지나고 나면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천천히 다시 펴진다.밀차의 바퀴 두개가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기운 씽크대와 냄비들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목이 멘다방 한구석 힘주어 꼭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찾아가선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기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서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연륜이 자라듯이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달같이 외로운 사랑이가슴하나 뻐근히연륜처럼 피어나간다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거리가 있다는 거지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아내와 나 사이에도천리는 있어,등을 돌리고 잠든 아내의고단한 숨소리를 듣는 밤방구석에 쳐박혀 핀 천리향아네가 서러운 것은진하디진한 향기만큼아득한 거리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지얼마나 아득했으면이토록 진한 향기를 가졌겠는가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것은살을 부비면서도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어디나 있다는 거지
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난하다고 해서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아침송(頌)/ 유자효자작나무 잎은 푸른 숨을 내뿜으며달리는 마차를 휘감는다보라젊음은 넘쳐나는 생명으로 용솟음치고오솔길은 긴 미래를 향하여 굽어 있다아무도 모른다그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길의 끝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여행에서 돌아온 자는 아직 없다두려워 말라젊은이여그 길은 너의 것이다비 온 뒤의 풋풋한 숲속에서새들은 미지의 울음을 울고은빛 순수함으로 달리는이 아침은 아름답다
초록의 시/박희진 풀밭 속에 말 한 필과 어린이 둘하나는 말 귀 잡고다른 하나는 말 갈기 잡고말에게 물 먹인다그저 묵묵히어떤 화가는이러한 풍경을 그림에 담았으나그 큰 화면은 초록일색일 뿐그래도 유심히 들여다 보았더니좀 진한 초록에선 말냄새도 나고좀 엷은 초록에선홍조를 띄운 어린이 볼냄새도그리고 물냄새도 나는 건 확실했어
거울/이상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내 말을 못알아 듣는 귀가 두개나 있소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거울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하는구료 마는거울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 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에 골몰할게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反對)요마는또 꽤 닮았소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자연/박재삼뉘라 알리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어느 가지에서는 지고들 하는움직일 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참말로 참말로사랑 때문에햇살 때문에못 이겨 그냥 그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생명/김남조 생명은추운 몸으로 온다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초록의 겨울 보리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추운 몸으로 왔다진실도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겨울 나무들을 보라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줄기는 이렇듯이충전 부싯돌임을 보라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친구가 아니다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을 모르는 이는친구가 아니다생명은추운 몸으로 온다열 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하얗게 드러눕는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Cambridige Universiy) 트리니티 칼리지(Triniy College)의 한 강의실 안에는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기적을 신학적으로 서술하라"였습니다.여러 학생 중 마치 조각상과 같이 수려한 외모의 한 청년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더니 시험 종료 시간을 몇 분 앞두고 시험지 위에 단 한 줄의 문장을 적어 제출했습니다. "물이 주인을 보자 얼굴이 붉어졌더라."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
촛불 /황금찬 촛불!심지에 불을 붙이면그때부터 종말을 향해출발하는 것이다어두움을 밀어내는그 연약한 저항누구의 정신을 배운조용한 희생일까존재할 때이미 마련되어 있는시간의 국한을모르고 있어운명이다한정된 시간을불태워 가도슬퍼하지 않고순간을 꽃으로 향유하며춤추는 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