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김남조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 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 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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