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45호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1박2일 이상의 소풍이나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들뜬 입맛을 가라앉히고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이 기웃거리는 식당이 있다. 원초적 미각(味覺)이 시작되는 곳이다. 1996년 10월20일에 개업(開業)한 식당으로 상호(商號)의 풀네임은 주인장(主人丈)의 캐리커처까지 디자인 된 ‘전계능 소고기 따로국밥’, 자부심으로 요리하겠다는 쉐프(Chef)의 이름과 시그니처 메뉴를 결합한 정문(正門)의 현판(懸板)은 식객의 입맛을 훔친다. 상차림 메뉴라고 해봤자 콩나물 국밥과 함께 두 종류다. 그러하기에 이 식당에선 뭘 먹을까 망설임의 결정 장애(障碍), '아무거나' 먹지 뭐(?)가 통하지 않는다. 아들 부부와 함께 경영하는 가족식당이라서 한결같은 맛과 위생 등 모든 면에서 집안의 명예를 걸고 한 치의 소홀함이 없기에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의 끼니를 때우며 식사 루틴이 되어버린 7년의 단골식당이다. ​

시그니처인 "소고기 따로국밥은 왜? 시키지 않느냐"는 主人丈 쉐프의 핀잔을 들을 만큼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콩나물 국밥을 즐겼다. 언제나 그러하듯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맛이 도는 달큰한 맛의 냄새와 군침이 도는 기억의 자아(自我)는 작은 차이가 있음에도 동시다발적(同時多發的)으로 미각(味覺)을 활성화 시킨다. 차가운 배가 따뜻해지고 냉가슴이 훈훈해지는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험난한 삶에서 살짝 비켜난 사소한 행복이 스멀스멀 솟아나면서 대접 받은 듯 마음이 풍성해진다. 치유 받는 느낌이 든다. '좋은 식사는 좋은 기분을 만든다'는 맛있는 내러티브는 삶을 긍정한다. ​여기에 이르면 미락(味樂)이 발동되고 위장의 허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虛飢)까지 달랠 수 있기에 미슐랭 별도 아깝지 않다. 뒷맛이 개운한 좋은 기분 때문에 매번 콩나물 국밥만을 거의 주문(注文)한다. 주문(呪文)에 가깝다.

1주일에 두 세 번씩이나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콩나물 국밥의 곡진(曲盡)한 국물이 천하일품(天下一品)이라서 육수 만드는 비법을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아홉 가지의 야채와 강원도 ‘덕장’의 황태(黃太)를 넣고 우려낸다면서 다음 질문을 막으려는 듯 웃으며 딴전을 피운다. 黃太는 단백질, 비타민 A, C, E, 칼슘, 인, 마그네슘, 아미노산 등 다양한 영양소(營養素)를 함유하고 있으며, 식품영양학적으로도 단백질의 제왕(帝王)이다. 북어와 비슷하지만 북어가 명태를 그냥 뻣뻣하게 건조시켰다면 黃太는 겨울이 되면 겨울바람과 날씨를 이용해 얼렸다 녹였다를 겨울 내내 반복하면서 건조(乾燥)하는데, 이곳이 '덕장'이다. 그날그날 새벽 3시경부터 육수를 끓인다는 말도, 자신도 모르는 뭔가 한 가지가 더 있다는 말도, 몹시 부지런하고 상냥한 며느리한테 들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의 전주 콩나물 체인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의 국밥은 정성껏 우려낸 국물은커녕 멸치나 버섯 대신 보리새우를 사용하거나 맹물에 끓여주는 곳도 있다. 뒤끝이 단순하지 않고 맛은 형편이 없다. 혹여 특별한 비법의 레시피가 따로 있다 해도 국밥의 관건은 국물이다. 육수가 받쳐줘야 한다. 黃太를 우려낸 육수는 높은 밀도의 풍미(豐味)가 밀물을 따라 들어오는 해풍(海風)처럼 입안으로 밀려든다. 입안에서 고소함의 향연이 펼쳐지고, 뜨거운 국물임에도 너무나 시원해서 대취(大醉)한 다음 날에는 몸에 남아있을 알콜이 날아갔음을 바로 직감할 수 있다. 제대로 풀리지 않던 무언가가 뻥 뚫리다, 숙취(宿醉) + 허기짐에 혈(穴)이 뚫리는 기분, 술 깨러 왔다가 술 한 잔 마시고 싶어진다.

​아주 특별한 ‘전계능 소고기 따로국밥’은 너무나 깊은 맛이라서 진짜 넘사벽이다. 육수에 대한 주인장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새우젓과 고춧가루는 테이블마다 있으나 식당이 제공하는 반찬은 배추김치와 무김치 두 가지인데 식감은 공히 아삭아삭하고 신맛이 묵직하지 않고 콩나물과 잘 어울려 매우 상큼하다. 콩나물 국밥의 정갈하고 깨끗한 맛을 결정하는 3요소는 시원한 국물과 아삭한 콩나물, 그리고 작은 계란이다. 계란을 풀면 고소하게 계란을 풀지 않으면 깔끔하게 국물을 즐길 수 있다. 국밥과 계란의 조화는 말할 필요도 없이 절묘하다. 계란은 풀지 않고 아삭한 콩나물부터 먼저 먹고 반숙 정도의 계란을 먹은 후 약간의 밥알을 씹으며 국물을 음미(吟味)한다.

​사이드 메뉴로는 단연코 모주(母酒)다. 직접 빚은 母酒는 막걸리에 약재를 넣고 끓인 약술이다. 도수는 낮은 편인데 후루룩 한 잔 마시면 어느새 포만감이 밀려오며 살짝 시큼하고 텁텁한 맛으로부터 한약재의 향이 올라온다. 인목대비 어머니(母)가 빚은 술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필자(筆者)같이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자식 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숙취에서 깨어나고 싶다면 인근에 사는 분들은 지체 없이 방문해 치료받고, 멀리서도 한 번쯤 방문하기 좋은 식당이자 치유의 맛집이다.

​방문할 때마다 식객들이 많이 있는데 웨이팅을 하더라도 ‘혼밥‘이 많아 회전이 빨리 되는 편이다. 43석의 매장 크기는 적당하다. 고집스럽게 매일 준비된 재료만큼만 요리하여 제공하기 때문에 저녁 8시 이전에 마감하고 문을 닫을 때가 많다. 소고기 따로국밥은 13,000원 콩나물 국밥은 9,000원 母酒는 2,000원이다. 신선한 재료와 귀신도 모르는 레시피로 대빈(大賓)을 대하듯 정성을 다하는 모든 차림상의 가성비(價性比)는 물론이고, 먹고 나올 때는 대접받은 느낌이 들 만큼 가심비(價心比)가 좋은 가정식당이다. ‘좋은 요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말은 ‘전계능 소고기 따로국밥집’ 앞에서 하는 말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뒤늦게 존재감을 드러낸 동장군(冬將軍)의 심술때문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던 어제 점심에도 큰 손님 대접을 받았지만,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콩나물 국밥 같은 따근하고 안정감 있는 전통 K-푸드가 자꾸 생각나는 건 筆者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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