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실학의 대종 성호 이익 선생의 생애와 학문을 살펴볼 수 있는 성호박물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호로 131에는 성호박물관이 있다.

성호 이익 선생이 안산이 낳은 조선후기의 대학자라는 사실을 이곳 성호박물관을 관람한 통해 처음 알았다.

성호박물관은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의 위대한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상설 전시실, 어린이 체험전시실, 영상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 할 수 있고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도 들을 수 있다.

성호 이익(1681-1763)
성호 이익(1681-1763)

성호 이익(1681-1763)

오늘날 실학의 대종으로 평가받는 성호 이익은 안산이 낳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다. 1681년 평안도 운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를 여읜 후 선영이 위치한 안산 첨성리에서 평생을 거주하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당시 조선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으며, 성호사설, 곽우록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후대 정약용 등을 비롯한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자료출처 : 성호박물관>

 

성호박물관

성호박물관은 성호 이익의 삶이 살아 숨 쉬는 바로 그곳에 2002년 건립되어 그의 생애와 학문을 소개하고 있다.

성호박물관 옆에는 성호 이익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성호박물관
성호박물관

 

성호 이익의 가문

여주 이 씨 가문은 성호 이익의 증조부인 이상의 대로부터 번창하였다. 이익은 이후 가문의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학문에 매진하였고, 그의 학문은 이병휴, 이중환 등 후손들에 의해 계승되어 일가학림 (一家學林)을 형성하였다. 또한 이익의 가문은 종조부인 이지정으로부터 이하진, 형 이서로 이어진 서예의 명문가이기도 하였다.

이상의 영정 17세기 초반, 경기도 유형문화재
이상의 영정 17세기 초반, 경기도 유형문화재
옥동금, 이익의 셋째 형 이서가 연주하던 18세기 제작된 거문고, 국가 민속문화재
옥동금, 이익의 셋째 형 이서가 연주하던 18세기 제작된 거문고, 국가 민속문화재
이하진 필적 천금물전 1680년경
이하진 필적 천금물전 1680년경

 

성호 이익의 세 가지 바람

성호 이익은 당대의 현실과 백성들의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백성들의 굶주림을 구제하기 위해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오랜 시간 세간에 전해오던 속담에 세상의 이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모아 기록하였다. 또한, 이익이 남긴 편지 속에는 가족과 지인의 안부를 걱정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담겨 있다.

 

학문의 길에 들어서다

성호 이익은 안산에서 한평생 재야의 선비로 지내면서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학문에 몰두하였다. 주자의 경전 해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맹자, 논어등 유학의 주요 경전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주석서인 질서(疾書)’를 남겼다. 이익은 정구와 허목의 학풍을 이었으며, 특히 이황의 학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실학자 성호 이익

성호 이익의 실학사상은 이수광과 유형원의 맥을 잇고 있으며, 다시 정약용으로 이어져 집대성되었다. 이익은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였고, 개방적인 자세로 서양의 학문을 수용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확대하였다. 성호사설에는 이익의 다방면에 걸친 학문적 관심과 사회 개혁 사상이 담겨있다.

 

영원한 스승, 성호 이익

성호 이익은 한평생 성호사설, 곽우록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윤동규, 안정복 등의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특히 정약용은 이익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이익의 사후 150여 년이 지나 여러 후학들의 노력으로 성호선생문집(1917), 성호선생전집(1922)이 발간되었다.

<자료출처 : 성호박물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   09:00-18:00 (17:30 입장 마감)

관람 문의 :  031-481-2754 (단체 관람 시 예약 필수)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1, 설날, 추석 연휴

주차요금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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