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를 다녀오며

밤 사이 천사가 다녀갔다. 눈떠보니 컴퓨터 위에 카드 한 장이 살포시 앉아 있다. 결혼 기념일을 맞아 며칠 다녀온 평생 잊지 못할 눈 쌓인 북해도의 한 그루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남편의 낯익은 글씨가 나무 아래 펼쳐진다. 몇 달째 쌓인 눈 위로 또 내리는 눈을 보며 마치 추울까봐 이불을 여미어 주듯이 느껴진다며 우리 부부의 사랑인 듯하다는 글이 나를 감동케 한다.

내가 잠든 사이 고심하여 그렸을 한 그루 나무가 살아서 내게 걸어 오는 듯 . 그이의 진정을 담은 길지 않은 문장이 나를 깨운다. 그래서 고맙다 그래서 기쁘다

46년 전 나의 선택과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해 주신 부모님이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선택을 위한 기로에서 고민하며 산다. 지금 좋은 것이, 오늘 행운이라고 생각한 것이 먼 훗날 돌아보면 만족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지 않은가.

우리 부부도 처음부터 이불을 여미어 주는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중매로 만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익숙지 않은 서로에게 기대어 믿음 하나로 가능성을 바라보며 출발한 사이 아니던가.

어느새 46년. 외로운 때도 있었다. 힘든 날도 있었다. 그리고 기뻐서 눈물을 흘린 날도 있았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나의 운명의 실타래였음을. 상견례날, 백구두로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던 그이의 머리 위로 은빛 왕관이 얹혀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살아야 할 날이 많지 않다는 것. 그것은 때로 아쉬움을 가져오고 자신감을 잃게도 만들지만 추억할 거리를 만들며 건너온 인생의 강. 그리고 넘어온 언덕 길은 함께여서 가능했다. 잡아 주던 남편의 따스한 손길이 있어 오늘에 이르렀다.

행운의 여신과 함께 찾아온 그날이 오늘은 행복으로 젖는다.감사하다. 아직 잠들어 있는 그이에게 이불을 여미어 주고 와야겠다. 그리고 한잔의 커피를 마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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