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라서 고생하던 차례준비는 옛일이 되어야

한국에는 관례상 구정과 추석의 아침에 지내는 차례가 두번 있다. 난 명절에 차례를 안지낸지 6~7년 돼 간다. 종갓집 맏며느리인데도~~

​제사도 아들에게만 대를 이어 내려 갔는데 현재 서울은 출생율이 0.5명인 마당에 아들, 딸은 둘째치고 아예 제사 지낼 후세가 없다. 즉 얼마 지나지 않아 제사 풍습이 끊어 질 판이다.

​관례도 인간이 만드는데 급변하는 현 사회와 달리 사람들 사고의 변화는 상당한 기간을 요하는 것 같다. 결혼을 1981년도 했으니 43년간 결혼생활을 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결혼생활은 희생과 양보의 연속으로 유지된다. 맏며느리로 들어와 의무만 요구하는 남쪽 경상도 집안의 시집에서.

결혼 초에는 사정상 남편없는 시집생활도 2년정도 해보기도 하고. 결혼 전에는 공주같이 대접 받고 자랐는데 결혼 후는 며느리라는 위치 그 자체가 최하위의 순위로 밀려간다. 그 당시 집집마다 고용하던 가정부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한다. 더구나 남편마저 옆에 없었고 , 미국에 공부하러 떠나고 없었으니!

​맏며느리의 의무 중에서 하나인 제사 의무를 평생을 지니고 살다가 7년 전부터 제사는 일년에 두번 지내고 명절 차례는 안지낸다고 선언했다. 제사는 주말에 우리사정에 맞게 날짜를 정해 평소 먹는 음식 몇가지와 술을 놓고 지낸다. 때에 따라 내가 바쁘면 남편은 작은 아들과 둘이서 알아서 지내기도 한다.

​동서도 3명이나 있는데 다들 부산에 사니 모든걸 나 혼자 해야한다. 혼자 하다보니 오히려 나 혼자 하는게 제일 마음 편하다. 어느날 문득 든 생각이 남편 보고 결혼 했고 난 일하러 온게 아니라 행복할려고 결혼 한건데 장남인 남편은 어딜가도 대접 받는데 생판 모르는 조상들 제사를 왜 혼자 나만 고생하면서 해야하냐는 부당함을 남편에게 따졌다 . 그래서 일년에 제사 두번으로 지내는 걸로 합의를 봤다.그것도 우리에게 맞는 날짜를 정하기로했다.

​젊었을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난 새 달력을 받으면 제사 날짜부터 챙겨야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스트레스를 나름 여행으로 풀었던 것 같다. 주부치고는 해외여행을 나만큼 많이 한 사람은 드물다. 제사 날짜에 걸리면 그 여행은 포기해야 하는게 무척이나 속상했다. 시부모님이 올라 오시니까. 그래서 요새는 그런 일은 없으니까 마음 편히 다녀온다.

​제사나 차례를 지낼때마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데 본인 만족으로 음식대접 함으로서 마음 편하게 하기 위함인가? 가족 모임을 위해 하는건가? 얼굴도 모르는 조상들 영혼이 주소를 찾아서 정말로 오셨다 가시는가? 별별 생각을 해봤는데 결국은 여자들 힘들게만 하고 오히려 이것땜에 집안 분란도 생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난 며느리에게 우리 죽으면 조상들과 함께 일년에 한번 지내는 기제사와 같이 지내면 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평제사 때는 큰아들 가족은 오지마라 한다. 바쁘기도 하겠지만. 난 내가 힘들었으니 편하게 해줄려고 큰아들 가족의 명절은 호캉스나 해외여행 가는 날이다. 이 때가 아님 장거리 여행이 힘들기도 하다.

지난 주에 두 가족들이 만나 맛집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이번에는 해외여행 가기로 했는데 뭐가 안맞았는지 대신 서울 조선 웨스틴호텔로 2박3일 호캉스 간다고 했다 바쁜 젊은 자식들은 명절에 가족과 함께 푹 쉬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명절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하고 그에 맞춰서 알찬 계획을 짜 공휴일을 보람있게 보내야한다.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남편이 바빠서 , 직장일, 공부땜에 등등으로 등한시 한 집안 행사는 서울 와서부터는 남편보고 다 해라고 통보하고 난 일절 안내려 간다. Now it's my turn. 내 할일은 다 했고 끝났다고. 틀린 말은 아니니까 반박은 안하는가 못하는가 그 임무를 지금까지 잘 수행하고 있다.​​

​아래는 호캉스중인 아들네 가족과 지난주에 두가족들이 갔던 맛집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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