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43호

(캡처 사진)

섣달그믐날에 헌 옷과 신발을 벗어 놓고 필자(筆者)의 몸에 잘 맞는 설빔을 장만하면서 대문을 열어 놓았지만 도둑처럼 담을 넘어 새벽 눈 내리듯 소리 없이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돌이킬 수 없는 청룡(靑龍)의 해 ‘갑진년(甲辰年)’이다. 출생의 비밀이지만 달라진 나이 계산법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태어난 해가 ‘임진년(壬辰年)’이라서 筆者와 龍의 관계는 숙명적(?)이고 자부심은 남다르다.

​龍띠는 일반적으로 기가 세고, 분노하며 후퇴할 줄을 모르며, 어떤 일에 매달리면 끝까지 일을 관철시키는 돌파력과 결단력이 있는 띠 동물로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한 성스러운 동물로 기억되고 있다. 천간(天干) 중의 甲은 커다란 나무의 물상이고 방위로는 동쪽에 해당된다. 동쪽을 상징하는 색깔은 푸른(靑)색이기에 甲辰年은 푸른 龍의 해인 것이다. 태초(太初)로부터 실재(實在)가 없는 龍은 제왕(帝王)의 상징이었다.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이오, 옷은 龍 무늬를 수놓은 곤룡포(袞龍袍)다. 그리고 제왕이 지닌 덕목은 龍으로부터 시작된다.

​고대사회에서는 왕이나 성현(聖賢)들이 출현하는 곳이면 항상 龍이 나타나는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하는 등 만물을 생성하고 어울리게 하는 다양성과 변화를 포용하는 덕(德)의 상징물로 여겨왔다. 한편 농경 사회의 조상들은 기우제(祈雨祭)에서 龍의 그림을 썼고, 帝王은 龍의 신(神)에게 풍년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祈願)했다. “비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龍'도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 민속에서 龍은 비와 물을 상징한다. 고대 중국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알려진 관중(管仲)의 저서 ‘관자(管子)’에서 龍은 마음먹기에 따라 아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며, 구름 위로 치솟을 수도 있고 깊은 샘 속으로 잠길 수도 있는 변화무쌍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 때문에 동양의 龍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인격체로도 인식돼왔다. 여느 동물처럼 태어나서 자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 되듯이 龍이 되는' 신성(神聖)한 존재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龍이 오복을 가져오고 용수오복(龍輸五福), 호랑이가 세 가지 재해(災害)를 몰아낸다 호축삼재(虎逐三災)라고 믿었다. 그래서 龍 그림을 호랑이 그림과 함께 정월 초 궁궐이나 관청 대문에 붙였다. 龍이 되지 못하고 물속에 산다는 이무기(monster serpent)는 천 년을 기다리다가 승천(昇天)에 성공해야만 龍이 될 수 있다. 또한 잉어(carp)가 용문(龍門)의 협곡(峽谷) 하진(河津)이라는 급류(急流)를 뛰어넘어 올라갈 수 있어야 龍이 될 수 있다. 즉, 龍이 된다는 것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출세의 상징인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등용문(登龍門)은 도둑이 담을 넘는 것처럼 여반장(如反掌)일 수는 없다. 중국 고전(古典)의 서사(敍事)로 알려진 ‘소광(簫曠)‘에서는 龍이 호색(好色)하거나 아무 것이나 먹는다면 그것은 거짓(僞)이고 龍이 아니라고 한다. 龍으로 살아가기는 어렵고 여러 제약이 있는 것이다. 龍이 되기도 어렵지만 龍 노릇을 하기는 더 어렵다.

하늘로 향한 龍꿈이라는 희망(希望), 희망의 새해로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 이제 더 이상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각오와 결심,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 등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마음속에서부터 불타오르는 시기다. 희망이라는 풍선이 우리 모두를 부풀게 하여 새로운 마음을 먹거나 나쁜 버릇을 끊는 데 새해 아침은 최적의 타이밍이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새해 결심은 줄어들지만 다짐이나 각오가 무성한 만큼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경험이 적지 않았기에 실패해도, '용용 죽겠지' 누군가 약을 올려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진정한 행복의 7가지 조건‘의 저자이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온 채정호 교수(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다시 도전하는 게 정상” 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이어트라면 5kg이 아니라 0.5kg 감량으로 목표를 낮게 설정하라”고 가볍게 조언(助言)한다. 아무튼 각오를 다지면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그러면 미래도 바뀐다. 龍이 될 수도 있다. “길이 가깝다고 해도 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며, 일이 작다고 해도 행하지 않으면 성취되지 않는다.“ 순자(順子)의 말에서 와닿는 메시지가 있다면 일단 시작해야 한다.

​이 모습 이대로 '잉어'나 '이무기'로는 더 이상 살아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龍 문신하는 조폭들처럼 폼생폼사할 수도 없다. 잠룡(潛龍), 드디어 날아오르다. 범인(凡人)일지라도 한번 쯤 龍꿈을 기대한다. 하루 하루의 시간은 언제나 똑같이 흘러가지만 새해 첫날을 지나는 마음은 늘 새롭기 마련이다. 새해 결심을 세우기도 하고 결심을 깨뜨리기도 하는 음력 설날 아침, 제대로 龍 노릇 하는 靑龍을 꿈꾸며 준비한 설빔을 차려 입고 문밖을 나선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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