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42호

‘생사사대(生死事大) 삶과 죽음이 가장 큰 일인데 무상신속(無常迅速) 덧없는 세월 빨리 가버리니 촌음가석(寸陰可惜) 짧은 시간도 한껏 아끼며 신물방일(愼勿放逸) 방심하고 게으르지 말라.’ 불가(佛家)에서 널리 회자(膾炙)되는 거대한 ‘화두(話頭)’같지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라는 조언(助言)이자 가르침이며, 죽비(竹篦)다.

竹篦에 깜짝 놀라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차근차근 둘러보았더니 1월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벌써 2월의 셋째 날이다. 새해 목표나 각오를 써 두었던 글씨의 잉크도 아직 남아있을 터이다. 새해의 단골 레퍼토리인 금연(禁煙)과 절주(節酒), 평생의 과제(課題)인 식이요법과 생활방식의 다이어트와 독서 등 건강한 삶을 지키기 위하여 오래된 나쁜 습관을 버리고 성장과 변화를 다짐하는 구체적 계획이나 다양한 목표들이 있겠지만, 필자(筆者)의 ‘화두(話頭)’는 ‘가일층(加一層)’이었다. 작년보다 더 열심히 ‘심기일전(心機一轉)’을 각오했던 새해맞이 이벤트로 불과 1개월 전이었다. 호기롭게 새해 문을 열고 굳게 다짐했던 것들도 나도 모르게 느슨해지고 흐지부지되는 경계, 작년 습관으로 원상회복(原狀回復)되는 요즈음이다. 이미 습관이 된 루틴이나 행동을 바꾸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한 달은커녕 한두 주도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빠른 세월의 문제인가 감당키 어려운 ‘話頭’인가 목적이나 목표의 과대망상(誇大妄想)인가 아무튼 ‘어영부영’하다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는 것 없이 한 달이 지났으니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말 중에 그 정확한 뜻을 모르는 채 이야기 할 때가 많다. 일상적으로 자주 듣기도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인용했던 ‘어영부영’이 그렇다. '어영부영'은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 되는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어영부영'은 뜻밖에도 조선 후기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국내외 정세(政勢)가 어수선해진 가운데 설치된 군영(軍營) 中 국왕을 호위(護衛)했던 ‘어영청(御營廳)’이 출처다. 御營廳은 규율이나 기강(紀綱)이 매우 엄격한 정예부대였는데 조선 말기 고종 때에 이르러 군기(軍氣)가 문란해지고 병기(兵器)마저 낡아 도저히 군대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본 백성들이 '御營廳은 군대도 아니다'라고 비꼬아 말을 했고, 이 ‘어영불영(御營不營)’은 음운(音韻)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의 ‘어영부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뿐만 아니라 돌이켜 보면 아무 일도 없이 허무하게 시간이 흘러 한 달이 다 갔던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다. 혹여 지금 내가 '어영부영' 살다가 새해 아침의 꿈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 볼 일이다. 쏜살같은 시간이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어쩌면 돌이킬 수 없기에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영원하기에 예술은 신성한 것이다. 어떤 분야의 장인(匠人)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을 다 바쳐도 부족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을 모두 다 이루기에는 삶이 너무도 짧았을 것이다. 가끔은 지루하고 때로는 숨 막히는 일상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예술가들처럼 장인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어영부영 허송세월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영부영’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오늘까지 살아왔다 해도 자책이나 회한의 진창에 허덕이지 않고 다시 또 다짐할 시간이다. 크고 작은 변화와 성과가 없기에 몹시 유혹적인 격려의 함성이 깃들어 있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의 마법(魔法)에 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다른 선택의 시간, 그 기회가 여지없이 도래 했다. 새로운 습관을 몸에 익힐 때까지는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며 각인시켜야 하는 기간이 최소 21일이라는데, 대부분의 경우 作心 후, 겨우 三日이라니 그야말로 소이부답(笑而不答), 싱겁게 웃지만 기실 웃는 게 아니다. 고백(告白)과 묘사(描寫)의 정점(頂點)은 아픔의 미학(美學)이다. 그러므로 答이 없는 것도 아니다. 作心三日은 세계 공통이라고 하지만 筆者의 큰 약점이기에 진저리를 치곤 한다.

​찰리 채플린이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웃음거리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즐기며 ‘作心三日의 반복(反復)은 습관을 만들고 그 믿음은 기적을 낳는다.’는 문구를 조합하여 억척스럽게 되새김하지만 위로가 안 된다. 노자(老子)의 일침(一針)이 죽비보다 더 아프기 때문이다. “승인자유력(勝人者有力) 자승자강(自勝者强)“ 의역(意譯)하면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것이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욕심을 이기는 사람은 힘뿐만 아니라 의지까지 굳센 사람이라는 뜻이다. 作心三日의 魔法에 걸려 넘어지거나 중단하는 것은 환경이나 상태가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한 것이다.

​그러나 시행착오(試行錯誤)의 시간이 무용(無用)하지 않은 것은 한국인에게는 설날이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음력 새해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계획과 목표는 정교하고 각오는 더 비장해야 한다. 심플하고 스마트한 기획 어떤 話頭(목표)를 가지고 정진(精進)할 때는 마치 닭(鷄)이 알을 품은 것과 같이 하면 ‘加一層’이라는 ‘話頭’에 근접(近接)할 것이다. 불교 용어인 참선 수행의 간화선(看話禪), ‘話頭’란 말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고민해야 할 난제’, '이루고자 하는 꿈', 또는 '이슈(issue)'다.

그야말로 천만다행(千萬多幸) 또다시 찾아오는 새해 ‘加一層’이라는 세 글자의 ‘話頭’를 ‘화두(花頭)’로 치환(置換)하여 가슴에 꽂고 향기롭게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한다. 아울러, 作心三日이라는 魔法의 성(城)을 무너뜨리고 좀 더 높은 곳으로 좀 더 멋지게 빌드업 된 筆者를 꿈꾼다. 단순하게 말하자. 특별한 이슈도 없이 이 정도면 근사하지 않은가. 근거없는 花頭를 자화자찬(自畵自讚)하며 흑백영화 속에서 푼수처럼 걸으며 춤추는 채플린의 콧수염을 떠올렸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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