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에는 자존감은 더욱 살리고 자존심은 죽이고!

 

희망찬 갑신년(甲辰年) 새해 정초부터,

무얼 ‘살리고, 죽이고’ 하는 이야기를 하려 하니 약간은 민망스럽다.

일단 자존감, 자존심이라는 용어가 심리학 쪽 용어여서

우리 같은 범인들로서는 정확한 뜻을 구분해 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동하며 여전히 같은 뜻의 말인 줄로 알고 사용들 한다.

내가 바로 그렇다.

그래서 벌써 3년 전에는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 어리석음을 범하여 평생의

대업이자 사명을 그르칠뻔하였고 다행히 그 우(愚)로부터 해방을 받았기에

그 소회를 피력해 두고자 한다.

우선 구글로 들어가서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검색해 보자.

0.37초 만에 무려 18만 개의 자료를 찾아준다.

그중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몇 개 골라낸다.

자존감은 자아 존중감 self-esteem의 줄임말,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치 있고 사랑받으며 소중한 존재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자존심은 당당한 마음. 자신의 품위를 지키겠다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가치, 능력, 적성 등 자기평가가 긍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심리상담센터, http://www.mykpcc.com/)

- 자존심: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 자존감: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자존심과 자존감,

그 한 끗 차이 https://brunch.co.kr/@nicetomeetme/6

자존감과 자존심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 다 자신에 대한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감은‘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긍정’을 뜻하나

자존심은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모든 원인과 결과를

‘나’에서 찾고 일이 어그러지면 ‘내 탓’을 합니다.

반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잘못된 원인과 결과를

‘남’에서 찾으며‘남 탓’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법원 사람들/https://www.scourt.go.kr/portal/gongbo

결국 자존감과 자존심은 마음의 상태이다.

하나는 우리가 키우고 살려갈 덕목이며 마음공부이고

하나는 한없이 죽이고 없애도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마음공부이다.

원래부터 자존감이 강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사는 동안 자존감이 강화된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는 자존심을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자존감은 키워내 살리고 자존심은 다스리고 죽여 나가는 것이

세상 사는 도리의 궁극에 이르는 길이다.

자존심에 조금만 상처를 입어도 버럭 화를 내는 사람,

자존심이 다칠까 봐 우물쭈물하거나 그 일에서 자신을 포기시키는 사람은

자존심이 너무 센 사람이다.

자존심이 센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가까이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깨우친 것이다.

 

나는 자존심이 너무 센 탓에 자칫 누군가로부터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들으면

당장 그 앞에서 화를 내기보다는 묵묵히 그 말의 의미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버리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자신을 어딘가로 격리해서 하던 일을 중단해 버리고야 마는,

그러면서 그 말이 곧 [하늘의 음성]이었다고 치부하는 모습을 고집한다.

 

나는 평생의 사명이자 대업이라 생각하는 것 하나를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 사명감에는 한국 낙농산업의 지속 발전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새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그 것은 1998년부터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던 [목장형유가공 교육] 열정이다.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마음 밑자락에 굳건히 자리 잡은 나의 「자존감」이다. 그런데 못난 자존심이 좀 상했다고 나의 사명을 버리겠다는 선언을 한

어리석음을 범한 일이 있다!

 

한번은 학회 일로 오래 알고 지낸 지인 한 분과 전화를 나누는 중에

“더러는 당신이 이렇게 열심히 목장형 유가공교육을 하는 것은

당신이 정년퇴직한 뒤 용돈이 좀 궁해서 그리하는 거라고 하던데요?”

“아, 그렇게들 생각한답니까? 당신이 방금 전해 주신 말은 당신의 입을 빌어서

하늘이 나더러 이제부터는 그 일을 하지 말라는 음성으로 들리는군요.

이제부터는 그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꼭 그런 뜻이 아닌데요?”라며 상대는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아, 됐습니다. 뭔가 정리가 되는군요.“

그러고 나서 한참을 그렇게 정리가 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정신의학신문이라는 인터넷 신문에서

‘ 자존감과 자존심’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그 글을 읽다가 내가 정리했다는 그 결정은「자존심 상처」로 인한

어리석은 것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그것이 더욱 명백해진 것은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사단법인 목장형유가공연구회의 회장직을 맡은 분과(그는 나의 축산대학 후배이기도 하였다)

전화를 나누다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와는 목장형 유가공교육으로 만나 인연의 끈을 이어 온 사이이기도 하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형님, 이번 가을, 우리 모임에 오셔서 목장형 유가공교육 좀 해 주시지요?“

”그래?, 그럼 가야지, 자네가 부르는데, 내가 가야지“해버렸다.

얼마 전에 ‘앞으로는 목장형 유가공교육을 하지 않으리라고,

이것은 곧 하늘의 음성이었다’라고 정리했다는 것은

온데간데없고 ”목장형유가공교육”이라는 말 한마디에

마치 나는 주술을 받은 것처럼 ”그럼, 내가 가야지“ 해버린 것이다.

그리 팔팔하던 자존심은 오간 데 없고 마음 자락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자존감이 발동하여 사태의 어리석음을 평정해버린 것이다.

나는 알량한 자존심은 살리고 자존감은 밟고서 내 평생의 사명감, 대업을 놓칠 뻔한 사건이

이렇게 쉽게 해소된 것을 보았다.

역시 강한 자존감은 자존심의 망동을 일거에 바로잡는다.

나는 그 뒤로 세 번씩이나 그 단체의 교육에 초청받아 목장형 유가공교육을 어김없이 수행하였다.

그러는 나를 보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내 길을 가련다는 의연한 자세,

자존감을 북돋아 가면서 말이다.

나는 이제 남은 내 여생에 지향할 지표 하나 세우는데,

항상 자존감은 더욱 살리고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쳐드는 자존심은

한없이 죽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 새해에는 자존감은 더욱 살리고 자존심은 죽이며 사는 것이 나에 대한 좋은 덕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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