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37호

우리의 이해 너머에 있는 시간을 이야기로 창조하는 소설가들의 상상력(想像力)을 벗어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초유(初有)의 사건이었다. 알카에다 조직원 19명이 민항기 네 편을 납치했으나 그중 하나는 불시착했고, 한 대는 미 국방부 건물 펜타곤에 충돌했으며, 두 대는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에 차례로 부딪쳤다. 부딪친 것이 아니라 공격한 것이다. 2만5000명 이상 부상자와 3000명 이상 목숨을 잃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이었다. 이 끔찍한 상처를 어떻게 회고(回顧)하며 극복할 것인가? 그곳에 정중하고 엄숙한 애도(哀悼)의 공간 메모리얼 박물관을 세웠다. ‘부재(不在)의 반추(反芻)(Reflecting Absence)' 이름에 걸맞게 되새김 할수록 잊을 수 없는 시간의 섬(島)처럼 고고(孤高)하다. 어찌 보면 인류 문명의 역사는 모든 죽음 앞의 성찰(省察)과 哀悼에서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살아 있는 자들의 인간적 연민(憐憫)의 배웅은 일회성 행동에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사자(死者)를 향한 인간의 哀悼는 특별하지만 진정한 哀悼는 과거에서 시작해 미래로 이어지는 법이다. 미래로 연결된다면 소설 속의 哀悼라 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최초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김홍신 대작가(大作家)는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지만,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라는 사랑의 붓글씨를 책상 앞에 붙여 놓고 꼭꼭 눌러 쓴 역작(力作),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를 지난 11월 출간(出刊)했다.

​슬픔을 표출하는 주체가 사람도 아니고 ‘시간을 哀悼‘한다는 발상의 어법(語法)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탐독(耽讀)하려고 메모지까지 준비했다. 1쪽부터 354쪽까지 너무나 흥미로워서 되알지게 읽고 생각하며 모처럼 독락(讀樂)을 누렸다. 울림이 크고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공감(共感)하는 부분을 빠짐없이 필사(筆寫)한 후, 여러차례 카톡으로 보냈더니 즉시 작가의 피드백이 왔다. “정열(情熱)과 정진(精進), 정독(精讀)과 정성(精誠), 정감(情感)은 매혹적이네요.” 과분한 상찬(賞讚)임에도 오르가즘을 느꼈던 허술한 필자(筆者)의 삶, 곡진(曲盡)한 인생길에서 작가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늘 듣는 귀가 춤을 추었다. 이야기 달인의 언어는 시도 때도 없이 삶의 심연(深淵)에 닿았다. 그런 연유로 주인공 ‘한서진’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씹듯이 읽을 수 있었다.

​군문(軍門)으로부터 걸어 나오는 분단의 이데올로기, 그 정치적 억압이 서슬 푸르게 존재했던 부조리한 제도의 얽힘을 실타래 풀 듯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로 질타(叱咤)하며 풀어낸 인간의 서사(敍事)는 의미와 재미를 갖춘 명작(名作)이다. 김 작가는 서언(序言) ‘작가의 말’에서 "억울하고 서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무너지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을 통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최고의 복수는 상대에게 똑같이 되갚아주려고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제 삶의 가치를 굳건하게 지켜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김종회 교수는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의 해설에서 “김홍신의 소설 세계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서, 문학의 정신적 완전주의를 현현(顯現)했다고 할 수 있는 형국이다. 그는 이미 거의 그가 아니다.“고 밝혔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의 영향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시간으로 이어지기에. 직접 겪은 이야기를 50년 만에 책으로 낸 작가의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라면서 哀悼는 곧 용서라고 묵직하게 이야기한다. 여전히 울림이 크다. 그가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교황으로부터 ‘엄지척’을 선사 받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빨리빨리‘가 가치가 된 현대 자본주의에서 돈은 저축할 수 있지만 도망가는 시간은 잡히지도 저축할 수도 없다. 현대인의 시간은 손에 잡히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죽인다는 것도 살릴 수 있는 것도 허구(虛構)다. 붙잡지 못하는 시간은 이미 죽어나간 시간으로 부질없다는 말이다. 虛構의 그물로 존재하는 실체 없는 시간은 삶처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는 발견되는 시간만큼 성숙하고 성장한다. 어디든 자유롭게 구구만리 떨어진 곳까지 하늘을 날아 다닌다는 상상의 동물 청룡의 해, 2024년의 시간을 맞이하며 아쉬움의 연민으로 먼저 죽어나간 2023년의 시간을 哀悼한다. Adieu 2023!!!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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