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35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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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칠순 여인네가/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나는 왜 항상/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마흔에도 그랬고/서른에도 그랬다/그게 내가 살아본/가장 많은 나이라서/지금은,/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이런 생각,/노년의 몰약 아님/간명한 이치/내 척추는 아주 곧고/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앞으로!/앞으로!/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많고 적은 나이에 저항하는 나이듦의 선행(先行) 울림과 여운이 작지 않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삶의 음율(音律)인듯 인생을 아우르는 노랫말처럼 가슴으로 파고든다. 참 멋지다. 황인숙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에 나온다.

너도 나도 분주한 송년모임의 달, 12월이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나이를 생각한다. 많은 나이로 살아왔거나 젊은 나이로 살아 갈 나이테의 무게만큼 자유 분망한 청춘이거나 느릿한 원숙(圓熟)함을 저울질해 보는 시간 아니겠는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몸과 마음의 상태를 점검한다는 뜻이다. 나이테의 눈금은 노소(老少)를 분별하는 수치(數値)가 아니라 나이듦의 미학(美學) 그래프 존재가치의 표식(表式)이다. 키케로가 남긴 수많은 저서(著書) 중 대중(大衆)이 좋아하는 것은 <노년에 관하여>라는 책이다. 카이사르와 반목(反目)으로 정계(政界)를 떠나 은둔(隱遁) 생활을 하던 키케로가 예순 두 살 무렵에 썼다. 주인공 ‘카토’라는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노년(老年)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형식이다. 주된 질문과 여기에 대한 답변은 곰곰 생각해 볼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중요 부분만 일부 요약해서 소개하면 이렇다.

세상엔 젊은 노인과 나이 든 청년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듯 늙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에 키케로는 이렇게 답한다. ‘노년이 되면 일을 못한다고? 도대체 무슨 일을 의미하는 것인가? 육체가 쇠약하다고 해도,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있다. 젊은이들이 갑판을 뛰어다니고 돛을 올리고 할 때, 노인은 키를 잡고 조용히 선미에 앉아 있지. 큰일은 육체의 힘이나 기민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사려와 판단력으로 하는 것이지.‘

​그러면서 “궁리하고 배우는 노년보다 더 즐거운 삶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고전 여행자의 책> 336쪽에도 언급되지만 일리가 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며 차분하게 궁리하고 익히는 시간이 더욱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즐겁게 궁리(窮理)하고 배우려는 노년을 ‘꼰대’라 폄하할 수는 없다. 보통 자기 자랑을 일삼고 예전의 방식대로 가르치려는 기성세대를 꼬집어서 ‘꼰대’라고 칭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기 자랑과 가르침의 일면에는 앞선 사람으로서, 또 성공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선험자(先驗者)로서의 태도가 배어 있기도 하다. 그 경험을 전하는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 무례하지 않다면, 꼰대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그 안에는 그 사람의 성공담, 영웅담, 때로는 실패담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꼰대‘ 리더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등의 생각이 들면서 자신을 잠깐이라도 돌아보게 된다. 반면교사(反面敎師)보다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성찰(省察)이다.

​일본은 60대를 실년(實年), 그보다 나이 많으면 고년(高年), 중국은 60대를 장년(壯年), 70대를 존년(尊年), 영미(英美)권에선 젊은(young)과 노인(old)을 합성한 '욜드(yold)'라는 단어로 노인들을 위로하지만 우리의 정서(情緖)로는 와 닿지도 않고 마땅치도 않다. 그런데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정쟁(政爭)을 일삼는 아수라(阿修羅)의 정치권도, 무능한 중앙정부도 아닌 경기도 의회는 ‘풍부한 경험을 쌓은 선배로서 사회 활동 하시라’는 응원의 뜻을 담았다면서 65세 이상 도민(道民)을 ‘선배 시민’으로 명시(明示)하는 조례(條例)를 만들었다. 어르신이나 골든에이지, 신중년보다는 좋아 보인다. 50대도 나이 먹은 사람 취급이 싫은데 60~70대는 꼰대스럽지 않아도 뒷방 노인으로 매도하는 요즘 세태에 <선배 시민>이라고 하니 고맙기는 하겠지만 부담도 있을 듯 싶다.

아무튼 ‘선배 시민‘이라는 단어는 창조적이고 신선하다. 생각은 물론 척추(脊椎)가 아직 곧은 ‘선배 시민’으로서 후배 시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태도의 필요충분조건을 <노년에 관하여>의 키케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老年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武器)는 학문을 익히고 미덕(美德)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어떻게 지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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