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은 죽은 나무가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나무다

동묘앞 역을 지나는 길에 박수근이 살던 집터와 박수근길 표지판이 있어 호기심이 생겼다. 동묘앞 역 6호선 출구 바로 앞에 박수근 창신동 집터라는 안내표지가 있다. 박수근은 화가 이중섭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다. 그의 작품으로 나무」 「노인과 나무」 「빨래터등이 있다. 2007년 미술품 경매에서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452,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 할 만큼 서민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 불린다. 그는 1950년대 가난한 시절 미국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때 소설가 박완서와 만나게 된다. 박완서는 서울대 국문과를 다니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하고 미군 PX기념품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박수근과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수근이 동시대에 한 장소에서 만났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대단한 인연이다.

당시 박수근은 기혼자로 창신동에 집을 구해 가정을 지니고 있었다. 업무가 끝나고 집으로 갈 때는 박완서와 같은 방향이어서 자주 함께 갔다 한다. 그 후 박완서는 미군 PX를 그만두고 오랫동안 박수근을 잊고 살았다 한다. 1965년 어느 날 박완서는 신문에서 박수근의 유작전 소식을 접하고 전시회를 찾았다가 큰 감명을 받게 된다. “박수근은 드디어 해냈구나!”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를 소재로 소설 나목(裸木)을 썼다. 39세 아줌마가 소설가로 등단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박수근의 그림 나무는 잎이 다 떨어진 나목을 가운데 두고 두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무심코 지나가는 한 여인의 모습과 그 여인을 바라보는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은 박수근이 살던 건물은 없고 집터있던 벽에 안내표지만 붙어 있다. 아쉽지만 박수근이 수없이 걸어 다녔을 박수근 길과 가난한 삶을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 했을 한국의 거목 박수근과 소설가 박완서가 함께 나눴던 이야기도 도란도란들려오는 듯하다. 잎을 다 떨 군 나목은 죽은 나무가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나무라고 박완서는 소설 제목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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