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34호

아주 먼 옛날 원시시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가 지금까지 전해지듯이 의미있는 시간의 순기능을 투시(透視)하는 것처럼 ‘신(神)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이어 인생에 다 나쁜 것은 없다는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을 묘사(描寫)한 에세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의 새 책을 냈다.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화두로 삼고 질문하며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인의 언어로 풀어냈다.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고, 어떤 이야기는 마음 깊은 곳으로 흘러가고, 어떤 것은 반전이 있고, 또 어떤 사연은 울컥 눈물이 날 만큼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도 무장해제(武裝解除)시키고 가슴을 열어 견디고 살아온 날과 견디며 살아갈 날을 사색(思索)하게 한다. 폼나게 思索하던 중 고개를 끄덕거리며 크게 공감했던 이야기는 ‘인생 만트라’였다. 인생 만트라는 죽어가는 자에게마지막으로 쓴다는 용천혈(湧泉穴)의 대침(大針) 같은 것이었다. 명의(名醫)의 大針을 필자(筆者)만 맞는다는 건 너무나 이기적이라서 의협심이 발동하여 호기롭게 토요편지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간추려 요약(要約)했다. 출판 기획의 취지(趣旨)는 살리되 읽기는 편하게 그러면서도 시인의 핵심 메타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배려했는데 조미료 없는 要約의 맛이 어떨는지는 의문이다.

전에 알던 한 여성은 음식을 먹기 전에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하고 주문을 외었다. 맛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마살라(양념)를 뿌리듯 자못 진지해서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도 그 주문을 왼다고 했다. “그렇게 한다고 맛없는 음식이 정말로 맛있어지겠어?” 하고 묻자, “그럼요, 이건 강력한 만트라예요!” 하고 말했다. 어느새 나까지 전염되어 고구마를 삶으면서도 “호박고구마가 되라, 호박고구마가 되라!”하고 주문을 외게 되었다. 그러면 평범한 고구마가 황금색 고구마로 변신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자기최면이다. 하지만 맛은 본래 음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속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꿀 자체에는 원래 단맛이 없는데 우리의 뇌가 그것을 달게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자기최면은 맛에 결정적 요소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만트라’의 ‘만’은 ‘마음’을 의미하고, ‘트라’는 '도구’이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마음 도구’이다.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 문장을 반복하면 강력한 파동이 생겨 마음이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 만트라 원리이다. '마음속에서 하는 말을 조심하라'는 격언이 있다.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해도 자기 자신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는 무의식 속에서 정신을 부패시키고, 어떤 단어는 기도처럼 마음의 이랑에 떨어져 희망과 의지를 발효시킨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질과 이로운 변화로 나뉜다. ‘네 말이 내 귀에 들린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단순한 성경 속 구절이 아닐 것이다. 가면이 얼굴을 누르듯 우리는 내면의 부정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되뇌인다.

​앤드류 뉴버그는 <단어가 뇌를 바꾼다>에서 “단 하나의 단어일지라도 신체적, 감정적 스트레스를 통제하는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명한다. ‘사랑’과 ‘평화’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 기능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곰돌이 푸>에서 푸는 피글렛에게 “오늘은 무슨 날이야?” 라고 묻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야.”라고 스스로 대답한다. 푸가 즐겨 하는 매일매일의 주문이다. 내 만트라는 ‘숨!’이다. 불안할 때, 혹은 감정적이 되거나 화가 날 때, 생각이 무의미한 방향으로 달려갈 때, 나 자신에게 ‘숨!’하고 말하며 심호흡을 한다. 그러면 감정이 다스려지고, 마음이 안정되며,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게 된다. 자신에게 거는 마법의 주문, 당신의 인생 만트라는 무엇인가? 그 단어와 문장 안에서 긍정이 발효되고 있는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치열한 삶을 피하지 않는 너무나 멋진 류시화, 그의 책은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섭렵(涉獵)했지만 이번만큼의 벅찬 감동은 전무후무(前無後無)했다. 작가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의 서문(序文)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생의 작가입니다. 우리의 생이 어떤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이며 그 다음을 읽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한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뿐입니다.” '그 다음을 읽고 싶을 만큼' 여기에 쉼표를 찍고,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물감으로 밑줄을 그으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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