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제933호

기억조차 희미한 지난 추석 명절 연휴에 무의미하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귀향(歸鄕) 인파에 휩쓸려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보다는 일주일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성묘(省墓)를 마쳤다. 그 대신 긴 연휴 기간을 활용하여 월터 아이작슨의 <Elon Musk>라는 두꺼운 책을 붙잡고 "그가 상상하면 모두 현실이 된다!"는 ‘일론 머스크’를 만났고 그와 연결된 129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일론 머스크'를 연애하듯 뜨겁게 만나며 그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황홀한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의 열정과 몰입, 이끌림의 매력과 마력, 그리고 무한도전의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용기의 무게에 대책없이 짓눌려 잠재된 열등감이 솟았지만 너무나도 좋았다. 735페이지의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거의 밑줄을 긋거나 또 다시 새길만한 이야기는 필사(筆寫)하면서 26페이지로 요약하였다. 이틀 동안 밤을 꼬박 새웠기에 세수나 하고 잠이나 푹 잘까 했는데 나도 모르게 어깨춤이 나왔다. 실로 오랜만의 자축(自祝) 퍼포먼스였다. 미친 사람처럼 화성에 내린 우주인처럼 혼자 웃고 환호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다보니 정자(程子)의 독논어(讀論語)에 나온 글이 생각났다. 유독료후(有讀了後) 논어를 모두 읽은 다음, (네 부류가 있다.)

첫째, 전연무사자(全然無事者) 전혀 아무런 일이 없는 인간. 둘째, 기중득일양구희자(其中得一兩句喜者) 그 중 한두 구절을 취하여 기뻐하는 인간. 셋째, 지호지자(知好之者) 깨닫고 좋아하는 인간. 마지막으로 직유부지 수지무지,(直有不知 手之舞之, 족지도지자(足之蹈之者) 글을 읽자마자 부지중(不知中)에 수무족도(手舞足蹈)하는 인간. 위의 내용은 동양고전 ‘맹자(孟子)’에 ‘手舞足蹈’로 다시 나온다. 인간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춤을 춘다는 뜻이다. 손(手)과 발(足)이 움직여 춤을 추는 것도 일종의 감탄사(感歎詞)다. 깨달음도 생각의 세계가 아니라 감정의 세계라는 의미다.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 성경(聖經) 또한 예외일 수 없다. 聖經 중간을 펼치면 시편(詩篇)이 나온다. 詩篇은 감탄사로 가득하다. 다윗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정 표현이 詩篇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手舞足蹈’의 경지처럼 詩篇의 마지막인 150편도 춤의 세계로 끝이 난다. 필자(筆者)의 춤은 일론 머스크의 작가 월터 아이작슨의 ‘감사의 말‘ 첫 머리를 筆寫한 직후(直後)다.

​“일론 머스크는 2년 동안 내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걸 허락해주었고, 회의에 초대해 주었으며, 수많은 인터뷰와 심야 대화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메일과 문자도 기꺼이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동료, 가족, 적대자(敵對者)들, 전(前) 부인들에게 나와 대화를 나누도록 권해주었다. 그는 이 책이 출판되기 전에 원고(原稿)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고, 책에 대해 어떠한 통제권(統制權)도 행사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는 자서전이나 전기(傳記)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객관적이거나 사실적이기 쉽지 않다. 때문에 합리적 의심이 존재하지만 작가의 ‘감사의 글’을 읽다보면 별에서 온 사람처럼 질투심이 자극되는 일론 머스크의 비범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슨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여과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것은 머스크라는 인물의 본질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아닐까? 안정적이든 혼란스럽든 그의 모든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로켓을 궤도에 올릴 수 있고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때때로 위대한 혁신가들은 배변 훈련을 거부하고 리스크를 자청하는 어른아이일 수 있다. 무모하고,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때로는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리고 미치광이일 수도 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사람 말이다.’

​이 정도 읽으면 춤이 나오는 이유를 간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혹여 읽지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 서점 주문(注文) 바구니에 머스크를 담고 있을 것이다. 아이작슨이 만났던 129명의 눈을 바라보며 악수할 수 있어야 춤을 추고 싶을 만큼 감동적인 일론 머스크의 세상 그 진면목(眞面目)과 대면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그는 만족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난 그저 그가 성공을 음미하거나 꽃길을 향유하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라임스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가수이자 머스크의 다른 세 자녀의 어머니인 클레어 부셰의 말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 삶은 고통이라는 데 길들여진 것 같아요.” 머스크는 이에 동의한다. “나를 키운 것은 역경 (逆境, adversity)이었어요. 그래서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지요.” ​내리막 탄탄대로의 순경(順境)보다 빛을 발하는 험준한 逆境의 무게와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한계점은 불화살이 되어 뭉근하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태양계의 네 번째 행성 화성(火星, Mars)에서 지구를 방문한 것 같은 인간 Elon Musk와 데이트를 하고 나면 ‘이보다 즐거울 순 없다’는 영화 대사 같은 글귀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절로 나온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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