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928호

조석(朝夕)의 일교차(日較差)가 극심한 간절기(間節氣)의 고르지 못한 날씨는 변화무쌍(變化無雙)하여 갑작스런 용무 때문에 외출(外出)해야 할 때는 차려 입고 나갈 겉옷이 늘 마뜩치 않다. 주섬주섬 걸치고 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그리고 귀가(歸家) 후에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날씨로어정쩡한 후회가 자주 생긴다. 나이듦의 연륜은 패션에도 나타나는 법인데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나이 탓의 둔함으로 치부하지만, 기실 날씨 변화를 읽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나태(懶怠)와 방일(放逸) 구태(舊態)와 의연(依然), 그리고 안일함 때문이다.

​강연 때마다 Ice breaking이 끝나면 Intro의 화두(話頭)로 ‘변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불변자 부득천하(不變者 不得天下)‘를 띄워 ‘변화(變化)를 통해 혁신(革新)'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기 위하여 근사록(近思錄)에 나오는 ‘군자지학(君子之學)’을 소개한다. 이른바 ‘우일신(又日新)’이다. 동양의 고전 대학(大學)에서도 ‘變化와 革新’이 君子(리더)의 최애(最愛) 덕목이여야 함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군자지학 필일신(君子之學 必日新) "불일신자 필일퇴(不日新者 必日退)" 이를 펼쳐 풀이하자면 "군자(리더)의 배움은 반드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고 새롭게 하지 못하면 반드시 퇴보한다." 인간의 삶에서 새로운 변화가 없으면 결국 도태(淘汰)된다는 뜻이 묵직하게 심금에 닿는다. 전진(前進)과 퇴보(退步) 그 사이의 어중간(於中間)은 없다는강력한 새김이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 테슬라의 일론 머크스 등 최고의 CEO들은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變化와 革新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입을 맞춘다. 습성이나 타성(惰性)을 멀리 벗어나서 변화를 통한 전진(前進)만이 삶의 질적(質的)인 향상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의 답은 명확한데 그걸 선택해서 실천하는 게 어려운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와 혁신'일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공자(孔子)가 나이 들면서 가장 가까이 한 책이 ‘주역(周易)’이었다. 그 유명한 위편삼절(韋編三絶), ‘언제 어디서나 간직하였기에 책을 맨 가죽 끈이 닳고 닳아 세 번이나 끊겼다‘고 했다. 인류의 스승인 孔子가 이처럼 좋아한 <周易>의 요점은 무엇이었을까? 한 마디로 ‘세상의 모든 것은 두루 바뀌어 진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周易을 변화의 책, The Book of Changes라 번역했을 정도다. '두루 주(周), 주변의 변화(易)'의 周易은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춘추(春秋), 예기(禮記)를 망라(網羅)하여 동양 철학의 근원적 원리를 담고 있는 철학서로서 상(象), 사(辭), 변(變), 수(數)를 통해서 길흉(吉凶)을 밝히고 나아갈 바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공자 말씀이라 전해져 오는 논변(論辯)은 대략 이렇다. "변화의 도<역(易)>를 아는 자(者)는 신(神)이 아는 것을 안다(知)." "易은 지난 과거를 드러내고, 오는 미래를 살피며, 나타난 것을 미묘하게 표현하고, 깊숙한 것을 드러내 놓는 것이다." 쉽게 이해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무튼 周易을 통해 역학의 근원적인 원리를 탐구하고, 그걸 공부하고 자각함으로서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 모색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이 진정 행복할 수 있고, 또 깨달아서 개인적으로 풍요롭고자 하는 것이 周易을 공부하는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周易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變이다. 變에서 革으로 化에서 新으로 이어진다. 체(體)는 살리고, 용(用)은 고치는 것이 불교의 오랜 전통인 방편(方便) 정신이라고 인정한다면 體는 變化이고 用은 革新이다. “궁칙변 변칙통 통칙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극한 상황에 달하면 변화하고, 변화하게 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 역경편 계사하(下)에 있다. 흔한 말로 ‘궁하면 통한다’는 ‘窮則通’의 숨겨진 키워드는 變에 있다. 요술 방망이와 같은 한자 變을 파자(破字)하면 몹시 어지러울 련(䜌)과 칠 복(攵)이다. 토요편지 버전으로 해석하면 ‘혼란한 상태를 공격하여안정되게 하려는 몸짓의 자형(字形)이다. 변화를 갈구하는 기운이 궁극(窮極)에 달하면 기존 질서를 깨는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通)의 정착을 가져와 오래(久) 유지될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다. 때문에 그러한 천지자연의 이치를 잘 깨달아 한 발 앞서 대비하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유연하게 처신해야만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열반경>에 나오는 ‘제행무상(諸行無常)’도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만고의 진리라고 강조한다. 어떤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해 내는 추진력과 순발력으로 환경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동물을 늑대라고 한다. 그래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늑대문화를 구현한 사례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 그렇지 않고는 결코 일류가 될 수 없다‘는 故 이건희 회장의 일갈은 늑대 문화의 시초다. 누구나 변화와 혁신을 말할 순 있지만 늑대 문화를 실현하는 건 극히 드문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도태 직전에 있는 모 정당의 혁신위원장 취임 일성(一聲)은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천명했다. 30년 전, 의지와 결단만으로 기적을 만든 고인(故人)의 피 끓는 외침으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환청(幻聽)일까. 나부터 시작해야 겠다. 변화에 대한 '쇠렌 키르케고르'의 명언(名言)이 떠오른다. '삶을 돌아보며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의 가르침은 옳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원칙을 망각(妄覺)한다. 언제나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의미와 상징, 그리고 가치를 부여한다면 舊態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變化의 두려움이라면 안주하려는 依然에서 홀로 서지 못하는 것은 革新에 따르는 고통 때문이다. 변화와 혁신은 궁극적 관심에 따른 주, 객관적인 성취이므로 억센 저항을 동반하는 새로운 차원(次元)의 등극(登極)이며 신세계의 발견이다. 그곳이라야 매일 다르게 그려지는 추색(秋色)이 보이고, 마침내 세상과 通할 수 있는 자동문(自動門)이 하마의 입처럼 열린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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