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

부동산 중개업소 달력에는 선없는 날 이삿날 표시가 되어 있다,./사진 강신영
부동산 중개업소 달력에는 선없는 날 이삿날 표시가 되어 있다,./사진 강신영

 

 

이사날짜를 왜 고집하나 했더니..

돈암동 아파트 세입자가 이사 나가는 날짜를 하필 조지아에서 귀국하는 바로 다음날인 10월23일을 고집했다.

나는 시차도 있고 정신도 차릴 겸 며칠 후인 25일에 하자고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일단 수락했는데 부동산소개소에 가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손 없는 날, 즉, 이사가는 날로 성북구 중개사협회 발행 달력에 뚜렷이 표시가 되어 있었다.

손 없는 날은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사람에게 해코지 한다는 악귀 또는 악신이 돌아다니지 않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길한 날을 의미한다. 음력 중 끝자리가 9와 0인 날이 손없는 날에 해당한다.

4층을 F층으로 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술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청년층 이하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개념이지만, 아직도 이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상당수 있으며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사, 결혼, 개업 등 중요한 날을 손없는 날로 정하려 하는 성향이 있다. 이 때문에 손없는 날에 용달을 부르려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손없는 날에 이사가 집중되기에, 손없는 날에 이사를 가려는 사람들은 이사업체에 웃돈까지 얹어가며 예약을 잡으려고 한단다.

다행히 조지아에서의 귀국이 18일로 조정되어 며칠 간 여유가 있었다. 큰 돈이 오가는 중요한 날이므로 전날 음주도 조정하고 정신적 준비가 필요했다.

어쨌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므로 아침부터 서둘러 부동산업소에 갔다가 서류 정리하고 인근 은행 지점까지 가서 새 세입자 전세금 받고 전 세입자에게 전세금 돌려 주는 작업을 끝냈다. 전세금 대출을 받았었기 때문에 일부 상환금을 전 세입자에게 먼저 보내고 은행 상환 입금 확인 후 잔금을 마저 주는 번거로운 작업을 해야 했다. 

저작권자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