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926호

가을 남자, 추남(秋男)이 아니라 해도 황금빛 가을이 깊어 가면 아무런 이유 없이 좋았던 인연들이 떠오르고 급(急) 만나고 싶어진다. 각자의 삶이 되고 운명(運命)이 될 인연은 낯선 곳에서 와서, 너도 나도 모르는 어딘가로 이어져 있다. 가고 오는 계절처럼... 특별한 인연이나 누군가를 그리워할수록 가을 타는 남자의 외로움, 그 온도계는 상승하고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걷는 것처럼 삶은 무거워진다.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는 이 멋진 가을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냥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아직까지 없다면 100세 시대의 장수(長壽)는 신(神)의 선물이 아니라 저주(詛呪)일 수도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우정의 영역(領域)은 남녀노소(男女老少), 구체적 대상이나 사물 등 모든 관계를 불문하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위적 예술로 승화되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깊고 넓은, 아울러 기쁨이 되는 원천(源泉)이다.

​인간경영과 대인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태어나 아름다운 친구 일곱 명을 소유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 한다. 그 아름다운 친구를 ‘가붕(佳朋)’이라 한다. 요즘 버전으로는 ‘브로맨스(bromance)’, 또는 ‘베프(best friend)’다. 가을 비 오는 날 빈대떡이나 파전에 막걸리 잔을 주고받거나 그저 알고 지내는 면우(面友)는 많겠지만, 마지막 가는 길의 빈소(殯所)를 눈물로 지켜줄 친구(親舊 =知音)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진한 우정일수록 그 바탕은 진한 사랑이지만 사랑보다 길고 담백하며 끈질기게 삶에 영향을 미친다. 친구의 '親'은 '애(愛)'의 상위개념이다. 내 친구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의 친구일까? 자문(自問)에 이르면 친소(親疎)의 거리부터 긴가민가하면서 불확실하다. ​풍요 속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알게 되고, 역경 속에 있다면 내가 친구를 알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연유로 쉽게 떠오르는 친구가 없지는 않지만 상대의 인정 여부까지는 안개속의 두 그림자처럼 흐릿하다.

벗의 사귐에 관하여 떠오르는 고사(故事)라면 단연코 '관포지교(管鮑之交)'다. 전래동화(傳來童話)처럼 오래 된 이야기이지만 흐뭇하고 유쾌한 감동은 늘 새삼스럽다. 춘추전국시대를 풍미(風靡)했던 관중(管仲)과 친구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시류(時流)와 세속을 떠나 오로지 친구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상징하는 아름답고 멋진 故事다. 늘 부러움의 시샘이 작동된다.

춘추시대 초엽, 제나라에 管仲과 鮑叔牙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제나라의 양공이 죽자 왕권 쟁탈을 위한 혼란 속에서 관중과 포숙아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치적 반대편이 되었다. 管仲은 한때 포숙아의 주군(主君)인 소백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소백이 먼저 귀국하여 제 나라의 임금에 오르자 管仲을 압송(押送)하라는 명령을 하였다. 제환공(소백)이 押送된 管仲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다음과 같이 진언(進言)하였다. "전하, ‘제(齊)’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만으로도 충분할 것이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고 싶다면 管仲을 쓰시옵소서." 아름다운 친구처럼 몹시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인 桓公은 管仲을 중용(重用)하여 정사(政事)를 맡겼다. 다방면으로 유능했던 管仲은 선정(善政)을 베풀어 마침내 춘추오패(春秋五覇)의 반열에 桓公의 이름을 첫 번째로 올렸다. 두 사람이 겪었던 신금을 울리는 사연들을 편지에 소개할 수는 없지만 (관포지교 검색 추천) 관중의 마지막 말은 울컥하다.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숙야(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 누군가의 친구,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친구 포숙아에 대한 관중의 멋진 헌사(獻辭)는 후세에 남길 붕우헌장(朋友憲章)으로도 손색이 없다. 관중과 포숙아의 사랑과 우정의 불빛이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꺼지지 않게 하는 명구(名句)다. 두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가늠하기도 어렵지만 몹시 부럽다.

​‘헬런 켈러‘는 말했다. "(좋은) 친구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존재이다." 친구의 의미를 잘 나타내 주는 명언으로 내가 웃고 즐거울 때 함께 해주는 것은 물론이겠거니와 내가 약하고 힘들 때에도 옆에 있어 주는 존재가 바로 친구 관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친구가 곁에 있다면 삶이 좀 더 여유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낙엽(落葉)을 밟으며 벗이여 어서 오라! 아름다운 친구를 부르는 것은 외로움의 온도를 낮추고 삶을 가볍게 하려는 행위예술이다.

말보다 몸짓으로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共有)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까지도 포용하는 피차(彼此)의 知我者,어디쯤 왔을까? 오늘 아침, 나뭇잎 흩날리는 계절의 공허를 씹어 삼키며 스스로 가을 남자가 되어 문밖을 나서는 이유는 요즘 자주 쓰는 말인 '베프'를 마중하기 위해서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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