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925호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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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이해인의 <인생의 열 가지 생각>의 71쪽에 나온다. 어떤 이유로든 건강에 자신 있다고 큰소리 치는 말은 정상적인 언어가 아니다. 마침내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악마와 같은 질병(疾病)의 원흉(元兇)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 곁으로 가을이 오듯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심하게 아팠다. 이까짓 아픔쯤이야 오버하며 발버둥 쳤지만 송곳처럼 파고드는 통증(痛症)의 기세를 참고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스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지경(地境)에 이르러서야 눈물을 머금고 119 신세를 져야 했다. 남의 집의 일 같았던 요란한 119가 대문 앞에 도착한 순간 이미 혼미(昏迷)해진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통증의 강도(强度)에 한 순간도 견디기 힘들었다. 운동선수처럼 팔뚝의 알통을 부풀리며 건강미를 자랑했던 블러핑(Bluffing)이 웃음거리가 될까 봐 미세한 병통(病痛)이 시작되고 있다는 낌새를 무시했던 후회막급(後悔莫及)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고통이었다. 폭풍전야의 성난 바다 밀물처럼 몸과 마음의 방파제(防波堤)를 넘어 밀려들 즈음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코로나 검사로 이어지는 검진과 더불어 입원 절차와 병원 생활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이던 필자는 환자답게 하얀 유니폼의 의료진에게 조용히 항복(降伏)했다. 헐렁한 환자복을 입기 전까지 그 어떤 병이라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다 병상에 누워있는지 대책 없이 마음이 슬프고 우울했다. 육체(肉體)의 질병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대의 병은 하늘에서 내린 것도 아니고, 사람이 준 것도, 망령이 준 것도 아니다. 그대가 생명을 얻어 신체 형상을 갖췄을 때 함께 생겨난 것이다." (-열자) 무심히 흘러가는 창밖의 구름이 하는 말을 옮겨 적으며 밑줄을 긋는다.

​외로운 병상(病床)에서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거창한 인생의 질문부터 필자의 곡진한 삶을 뒤돌아 볼 수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가득 차 있었던 일상에서 모든 것이 싹 빠져나가 진공(眞空)이 된 시공간, 낯선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기회로 보이기도 했다. 보왕십매론의 첫 줄에 이렇게 쓰여 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갑작스런 질병일수록 건강을 자랑하는 무모함을 삭제시키는 藥이 된다는 것 많이 아파본 사람들일수록 이 말의 깊은 뜻을 알 것이다.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병고(病苦)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인정하는 것이 삶을 바꿔놓을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색은 빛의 고통’이라 했다. 심한 고통을 겪은 다음이라야 진정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내 몸에 病 없기를 바라는 것보다 病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회복할 수 있는 마음의 색채(色彩)를 탐색하고 집중하는 것이건강한 삶이다. 한 세상 살면서 매사 조심조심 건강을 염려하며 위축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건강함에는 늘 겸손할 일이다. 서두(序頭)의 ‘어떤 결심’은 무모했던 필자의 과거와 ‘헤어질 결심’의 다짐이다.

시니어타임스 발행인 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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