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어릴 때는 밖에 나갔던 형제들이 과자랑 선물 한 보따리 사 오는 것이 즐거웠다.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사 들고 고향 집을 찾았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명절이 되어도 쓸쓸하다. 시골에 모셔진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 형제들이 매년 금초하곤 했다. 일도 해본 사람이 잘한다. 아버지 한 분 산소 깍는데 제초기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금초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추석날은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아 술 한 잔 올리고 절을 했다. 그러다 30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6·25참전 용사라는 것을 알게 되어 호국원에 모셨다. 국가에서 관리해 주니 산소 풀 깎을 일도 없어졌다. 재작년에 어머님도 돌아가시어 아버지 계신 호국원에 함께 모셨다

어릴 때 장난감으로 갖고 놀던 알록달록한 훈장의 기억을 추적해 보니 참전한 것을 알게 되었다. 군 입대할 때 아버지는 딸 4살, 아들 2살, 그리고 어머니 배속에 딸 하나를 임신한 상태였다. 어린 자녀 셋을 두고 전쟁터로 징집되어 가신 거였다. 떠나는 본인도 그랬겠지만 보내는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까?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이나 아내는 나날이 악몽 같았을 게다. 다행이 살아오셔서 나를 낳았고 6남매를 낳아 기르셨다. 그리고 65세 나이인 1992년에 돌아가셨다. 30년 고향묘지에 계시다 지금은 전쟁을 함께 치른 전우들과 호국원에서 영면에 들으셨다.

명절에는 송편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전에는 집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일일이 만들었다. 지금은 그렇게 많이 만들지 않아 주로 사서 쓴다. 부모님 뵈러 가는데 포와 약주술을 샀는데 웬지 마음이 쓰인다. 어머니는 술을 안 드시는데 어머니도 드실 송편이 필요했다. 시장을 뒤져 떡집을 찾았는데 자기네는 직접 농사지은 아키바레 쌀로 송편을 빚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가족끼리 떡집을 하는데 송편과 기지떡 단 두 종류만 한다고 했다. 먹어보니 쫄깃하고 맛이 달랐다. 기지떡은 옛날 그대로의 맛이었다.

송편 만드는 기계 한 대에 늙으신 부모와 아들 며느리로 보이는 네 명이 붙어 있다. 식구끼리 운영하는 수공업이었다. 처음보든 장면이라 한 참을 서서 지켜봤다. 반자동식 기계에 반죽을 밀어 모양을 만들고, 기름칠 한 후 그 속에 갈은 깨를 넣고 나면, 기계가 오므려 송편을 송출해 낸다. 제법 빠른 속도로 송편이 나온다. 정성껏 만든 송편과 기지떡을 샀다.

호국원 제1묘역에서 두분이 모셔진 봉안담을 열어 묵념을 드렸다. 두 분의 유골함과 사진을 직접 접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곳에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제례실로 내려와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약주와 명태포, 그리고 어머니를 위한 송편과 기지 떡을 놓고 제례 의식을 갖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제례실에는 두 분의 사진이 영상에 떠 있어 살아계신 듯했다. 두 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명절을 맞아 집을 찾을 때 반가워하시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