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짇고리의 세월

올해로 결혼한 지 43년 10개월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세월인데 무심하게 취급한 게 있어 다시금 쳐다본 게 있다. 반짇고리이다. 결혼할 때 가져온 것으로 거의 별로 손닿지 않는, 소중한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아직까지 곁에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워진다.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어쩌다 단추나 떨어지면 찾게 되는 것이다. 예전엔 혼수 필수품이었는데.. 아마도 구멍 나서 기워 쓰는 물품들이 많지 않아서 일 것이다. 예전엔 구멍 난 양말은 못쓰는 전구를 양말 안에 넣어서 꿰매어 신기도 했는데 요즘은닳아 구멍 나면, 이미 구멍 나려 헤진 기운만 보여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시대이다. 떨어지려고 덜렁거리는 단추는 세탁물로 세탁소 가져가면 단단하게 꿰매어 보내 주기도 한다. 이러니 반짇고리의 쓸모는 점점 없어져 간다. 이불은 어떤가. 예전처럼 명주솜 이불이 아니고 다들 침대를 쓰니 홑청을 뜯어서 풀 먹여 다림질하고 꿰맬 일이 없다. 베개도 벼갯잎을 빼서 끼우면 되는 편안한 제품들이 많다. 그러니 반짇고리는 쓸래야 쓸 일이 거의 없다. 반짇고리를 열어보니 갖가지 색실들이 가득하고 바늘도 크기 별로 꽂혀있다. 그러니 반짇고리를 열 틈이 없으니 바늘도 거기에 꼽혀 세월을 무사히 보냈다. 그럼 이 바늘들도 이 반짇고리에서 43년을 보낸 건가? 바늘을 사 본 기억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약간 삭은 티가 나지만 아직도 건재한 반짇고리. 세월에 의해 조금은 삭은 나이지만 아직은 건재한 나. 두 모양이 닮아있는 것 같다. 손 닿을 곳에 있지만 선뜻 필요하지 않아 눈으로 스치는 그곳에서 쓰임 받을 때를 묵묵히 기다리는 반짇고리. 그래도 그 속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고운 색색의 실과잘려야 할 것들을 시원하게 잘라줄 수 있는 가위와 찔리어 피를 보지 않게 해주는 골무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예전에 수박화채 해 먹을 때 이불 꿰매는 긴 바늘로 얼음에 대고 수저로 톡톡 치면 얼음이 깨져서 시원한 수박화채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참 바늘이 요긴했는데.

다시 오라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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