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선원 추모 공원 영탑
                                                            00선원 추모 공원 영탑

얼마 전 절에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절은 보통 크기의 절이었다. 그런데 절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커다란 석탑(영탑)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3(三代)의 위패를 보관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절에 가면 한 두 개의 석탑이 있었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그 중 대표적이다. 그런 모습을 보아왔던 나에게 저렇게 많은 탑은 가히 충격이었다. 어른 키보다 큰 육중한 탑의 크기와 규모에 압도되었다. 양쪽 산을 수백 개 아니 수천 개나 될 듯한 석탑이 뒤덮고 있었다.

                                                        모집중인 봉안당
                                                        모집중인 봉안당

 

아침 J 조간신문 한 면을 장식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봉안당 모집 광고였다. 마치 아파트 같은 높은 형태의 건물이었다. 층마다 칸칸이 유골함을 모시고 추모하는 공간이다. 층층이 좁은 공간에 많은 유골을 모실 수 있어 좋은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아서도 아파트 생활을 했는데 죽어서도 아파트 생활을 하게 생겼다. 매장문화가 대부분이던 시절 유해를 땅에 묻고 흙을 둥그렇게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너무 많은 산소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생긴 문화가 화장 문화다. 지금은 화장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화장 후 뼈를 곱게 갈고 유골함을 만들어 보관한다.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 수십 기를 한곳에 보관하기도 한다. 요즘은 수목장도 유행이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있다. 성남의 어느 화장장에 가보니 화장하고 개별 보관하는 추모 원도 있지만, 개별 보관하지 않고 유택동산에 뿌리는 산골의 방법도 있었다.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보니 들판에 조그만 동산만 있어도 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산은 적은데 수천 년 내려오며 돌아가신 분들을 모셔야 하니 그야말로 묘지 천지라고 할 수 있었다. 지자체에서 오래된 묘지를 화장하도록 권유하는 독려 문이 나붙어 있었다.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

지난번 길상사 갔을 때 법정 스님이 묻히신 곳을 봤다. 봉분도 큰 영탑도 없었다. 담벼락 밑에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이라 써진 표지판 하나만 서 있었다. 그리고 생전 본인이 빠삐용 영화를 보고 나서 손수 만드셨다는 낡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수없이 탈출을 시도하다 꿈속에서 빠삐용이 재판관에게 항의한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내가 왜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합니까?” 재판관은 빠삐용에게 말한다.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것은 중죄다그 대사를 보고 법정스님은 그 의자에 앉아 평소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고 한다.

                                   빠삐용 의자
                                   빠삐용 의자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좋은 환경에 모시고자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단지 너무 규모가 크고 온 산을 다 덮을 정도의 규모로 확장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골을 모시는 것도 아니고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라면 더하다. 조금 아담하게 해도 얼마든지 모실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영탑 한 기의 가격도 2천만 원이라 들었다. 규모를 반으로 하고 1천만 원 정도 하면 어떨까. 이대로라면 앞으로 몇백 년, 몇천 년 뒤엔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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