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덕궁은 260여년간 조선 제1의 정궁으로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 등록

지난 12일 10시 70살 넘은 시니어 20명이 안국역 3번출구에 모였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걷기 위해서다.

이들은 중동고등학교 64회 동창생들로 이뤄진 산우회 멤버다. 한때는 청계산, 북한산 등 수도권 일원의 산과 멀리 설악산, 지리산 종주도 경험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산 정상을 멀리하며 둘레길 위주로 바뀌더니 이제는 궁궐이다.

계동 현대사옥을 지나 창덕궁 돈화문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갔다. 성인 입장료는 3,000원이지만 65세를 넘으면 무료다.

돈화문 내부 종합안내도 앞
돈화문 내부 종합안내도 앞

종합안내도 앞에서 인원 점검하고 있는데 궁궐 관계자가 "15명 이상 단체로 오면 정해진 해설시간 외에도 해설사를 특별히 배정해 줄 수 있다"고 함에 따라 해설을 요청했다.

우리와 연배가 비슷한 김무홍 궁궐해설사는 시니어에 맞춘 어휘와 내용으로 안내한다.

김 해설사는 우리의 어린 시절 시대상황에 맞춰 금천교에서부터 낙선재까지 인정전, 선정전, 희정당, 대조전 등을 정사와 야사를 섞어 재미있게 해설해 주었다.

특히, △왕과 신하의 길, △3차 과거 시험은 인정전 앞 마당에서, △선정전 청기와는 아라비아 수입품, △순종황제가 타고 다니던 승용차 길 등 흥미진진한 소재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김무홍 궁궐해설사
김무홍 궁궐해설사

창덕궁은 260여년간 조선 제1의 정궁으로 활약했으며, 1997년 UNESCO 세계문화유산 등록되었다.

금천교는 궁궐에 남아있는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진선문을 지나야 비로서 궁궐 안쪽이 된다.

금천교와 진선문
금천교와 진선문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서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사신 접견 등 나라의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서양식 실내 장식이 도입되면서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설치되었다.

인정전
인정전

청기와를 얹은 선정전은 왕이 평상시 정사를 톨보던 편전이다.

희정당은 왕의 생활공간이었으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았으며, 다른 용도로 자주 사용되면서 인정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었으며 왕실 생활의 마지막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화재로 전각이 불탔을 때 희정당은 경복궁 강녕전, 대조전은 교태전의 건축자재를 옮겨 지었다.

선정문
선정문

낙선재는 1960년대 이후 거주했던 순정효황후, 영친왕, 이방자여사, 덕혜옹주 등 구 황실 일가의 일화와 생활상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낙선재
낙선재

궐내각사는 왕을 가까이 에서 보좌하기 위해 궁궐 내에 세운 관청이다. 이들에 대한 해설을 듣고 난 윤종훈군은 "창덕궁 궁중침실 곁에 있던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삼사의 사무소 大廳이 시도 때도 없는 신하들의 간언에 짜증난 숙종이 온돌을 마루로 바꾸라는 어명으로 대청마루가 생겼다." 는 대목에서 "대단한 지식을 얻었다"고 감탄했다.

궁궐전각을 둘러보는 중에 세계잼버리대회에 참석했던 일본을 비롯한 3개국 단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K-Pop 공연 참관에 이은 고궁 답사에 들뜬 표정이었다.

관람중인 세계잼버리 단원
관람중인 세계잼버리 단원

낙선재를 끝으로 후원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넘어간다.

창경궁은 세종 때 창덕궁 동편에 상왕(王) 태종을 위해 창건한 수강궁터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다시 크게 지은 궁궐이다. 창경궁과 창덕궁은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기 때문에 합쳐서 동궐(東)이라고 한다.

1826년경 그려진 동궐도(東圖)에는 여러 대비궁, 후궁과 공주들의 처소, 궐내각사 등이 촘촘하게 들어서고 곳곳에 정원 시설이 조화를 이룬 당시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창경궁도 임진왜란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다시 세운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 등은 그 당시 재건된 건축물이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으뜸 전각으로, 정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국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의 공식적 행사를 치렀던 장소다.

명정전
명정전

통명전은 ‘통달하여 밝다’라는 뜻이며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의 으뜸 전각이다. 양화당은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했다.

통명전과 양화당
통명전과 양화당

영춘헌은 정조가 즉위 후 자주 머물렀던 장소이자 승하한 곳이다. 정조는 영춘헌을 독서실 겸 집무실로 이용했다. 집복헌은 후궁의 생활공간으로 사도세자와 순조가 탄생한 곳이다.

영춘헌
영춘헌

"조화를 넓힌다"라는 뜻을 지닌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이다.

홍화문
홍화문

어린 시절 창경원으로 알려진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궁궐 일부를 허물고 공원으로 격하시킨 곳으로 동물원과 식물원, 어린이 놀이기구 등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벚꽃나무는 여의도로,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으로 이전시켰으며, 현재 옛 궁궐의 면모를 복원중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집과 학교에서 가까운 서울 한복판에 있어 어릴 때 소풍과 가족 나들이로 많이 다니던 곳이다.

그동안 방문하지 못하던 옛 궁궐을 수십년 만에 마주한 70대 시니어들은 짙은 감동의 여운을 음미하며 원남동 돼지불백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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