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바다 (사진 : 미래에셋 김경록 박사)
태풍이 지나간 바다 (사진 : 미래에셋 경영고문 김경록 박사)

 

요즈음  

너나 할 것 없이 

입(口)이 있는 사람은

선(善)과 악(惡)의 본질과 

경계를 뒤흔드는 

불협화음(不協和音)을  

질타(叱咤)하지만 

소음(騷音)이 될 뿐, 

말없이 듣는(聽) 사람은  

두 눈을 씻고 보려 해도 

도대체 없다. 

대낮 도심의 흉기 난동과

홍수피해와 재난(災難),

첫 삽도 뜨기 전에

갈라진 양평 고속도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상반된 주장,

죽음을 재촉하듯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노인들을 울리는 

비례(非禮)와 폄하(貶下),

여기에 불을 지르듯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의

준비 부족으로 인한 파행과

국가적 망신살(亡身殺).

이를 연유로 한 

몰염치(沒廉恥)의

저속한 책임공방(責任功防).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사는 그 누구도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겠지만,

단 한 사람도

어른스럽게 '내 탓이오'하며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고,

궁색하게 '네 탓이오!'라며

책임 회피를 위한

정치인들의 삿대질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이에 질세라

반대편이 상식을 말하면

몰상식이라고 여기고,

자기편이 거짓(僞)을 말해도

참(眞)이라 믿는 

‘내로남불‘의 

이전투구(泥田鬪狗),

허접한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권의 아귀다툼,

막장 드라마를 압도한다.

그리고

유튜브 방송 등 

사이비(似而非) 언론의 말장난,

가짜 뉴스를 양산(量産)하는

소인배(小人輩)들까지

때를 만난 듯 아우성이다. 

오죽했으면 

<행복의 기원> 저자(著者)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요즘 한국 사회를 

“지옥(地獄)으로 가는 길”

같다고 하면서

모두가 ‘자기 권리’만

외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세상이 소란스러울수록

말하려는 내용이 

‘침묵(沈黙)’보다 유익하고

더 아름다울 때만 

정성스럽게 입을 열어야 

신뢰할 있는 법이다.

혹여 

CEO 토요편지가 

騷音하나 더 보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숙고(熟考)했던 부분이다. 

아무튼 

요즘 혼란을 지켜보면서 

귓가에 맴돈 글귀가 있었다. 

“정수류심 심수무성

(靜水流深 深水無聲)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마음이 깊고 

속이 꽉 찬 큰 사람들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도

자신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할 말이 많아도 

꼭 할 말만 하기 위해

생산적인 사유(思惟)의 시간을 

‘沈黙‘으로 지킨다.

옛말에 '沈默‘이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 후에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를 소망하는 

농부(農夫)의 기다림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沈黙이란 

긴 인내(忍耐)의 시간을, 

희망(希望)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펄벅 여사는  

“沈黙은 그 어떤 노래보다 

음악적이다"라 했다.  

각종 騷音에 시달리며 

혼(魂)이 없는 듯 

살아가야 하는 

혼돈(混沌)의 세상에서 

'沈黙'이 주는 유익(有益)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영혼(靈魂)의 주술(呪術),

그런 음악적 ‘沈默’ 안에서  

진리(眞理)를 찾을 수 있고  

참된 존재의 가치(價値)가   

빛나기 때문이다. 

 

옛날 어떤 가정에 

부산스러운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회중시계를 가지고 놀다가 

잃어 버렸다. 

아이는 열심히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자 

어머니에게 고백했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의 귀중한 보물이라 

아버님께서 아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와 어머니는 

온통 집안을 뒤졌으나 

찾을 길이 없자 

아버님께 사실대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버님은 

"너무 걱정 말거라 

찾을 수 있을게다!"하며

모든 하던 일들을 멈추고 

조용히 있으라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위 환경이 조용해지자 

시계는 구석진 바닥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리고 있었다. 

그러자 이렇게 말했다. 

“얘야! 세상이 시끄러울 때는 

조용히 침묵하고 있어 보거라.

그러면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잊거나 잃어버린다는 

현실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沈默은 

자신의 허물과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며

긍정적인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沈黙은 

반박하기 가장 어려운 

주장 중 하나이며,

지혜를 키우는 

수면(睡眠)‘이라는 격언에 

밑줄을 긋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불과 2년~3년이 걸리지만,

沈黙을 배우기 위해서는 

2~30년 아니라 

70년이 걸린다고 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沈黙하지 못하는 사람은 

요지경(瑤池鏡) 세상의 

분노(憤怒)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은 '沈黙'이 

'善'이다.

 

글 쓴이 : 시니어타임스 박영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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