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맛있는 계절이다. 6월이 중순에 접어들어 하지를 넘기면 감자가 잘 영글어 맛있는 때다. 어린 시절 우리는 그 감자를 하지감자라 했다. 하지감자는 맛이 잘 영근 감자로 알고 자란 나는 해마다 이맘때면 감자를 찾는다. 이 감자를 햇감자라고도 불렀다. 왜냐하면 가을감자도 있기 때문이다.

수미감자가 부스러질 정도로 잘 익은 치즈를 만나면 환상적인 식탁이 형성된다. 감자를 삶아서 살짝 으깬 뒤에 잘 익은 치즈와 섞어 먹으면 두 개의 자연이 어울려 내는 맛과 향의 교향악이 온몸을 소름 돋게 만든다. 나는 이 맛과 향은 반드시 6월이 가기 전에 누려야 남은 반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때 쪄내는 감자는 반드시 어른 주먹만큼 커야 하고 으깨서 먹을 때 폭삭거림이 풍성한 수미감자여야 한다. 쪘을 때 쫀득쫀득, 찐득거리는 물감자는 절대 사절이다.

지금은 감자의 계절이지만 살구의 계절이기도 하다. 감자와 치즈를 먹고 난 뒤 잘익은 살구 절반을 쪼개 먹는 즐거움은 행복 그 자체이다. 치즈는 반드시 1년 이상 숙성시킨 본질적 향과 맛이 풍성한 것이어야 한다. 경질 치즈로써 1년 이상 숙성한 어떤 치즈든 감자와 잘 어울린다.

그렇지만 나에게 딱 집어서 알려달라 한다면 그뤼에르, 파르메지아노 레지아노(미국인들은 그냥 파르메산으로 부른다), 체더, 흐가우다, 에담, 꽁떼, 보포르, 그라나 파다노, 아시아고, 아펜젤러, 만체고를 추천한다.

영국의 자존심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체더 치즈이다. 억지같은 소리지만 세계치즈시장 경매가가 체더 치즈 경매값으로 매겨진다.

 지금껏 내 기억에 가장 맛있는 치즈는 단연 꽁떼 치즈이다.

그뤼예르 치즈는 에멘탈보다 몇 배 맛있는 치즈이다. 감자와도 잘 어울리는 스위스 정통치즈다.

만체고 치즈의 맛은 스페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스틸튼, 로크포르, 고르곤졸라 치즈는 우리 수산물로 치면 홍어 냄새같이 원색적 냄새가 나는 곰팡이 숙성치즈로 감자와 함께 먹는 것은 치즈 마니아가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을 일이다. 다만 요즘 갓 채밀해 낸 아카시아꿀을 듬뿍 찍은 치즈와 감자의 삼각편대는 당신의 입과 몸을 전율시킬 것이다. 여기에 가장 헤비(heavy)하고 드라이(dry)한 와인 한잔을 곁들인다면 평생 잊지 못할 오묘한 치즈와 감자 맛의 추억도장을 찍어 줄 것이다. 지금은 감자의 계절이면서 살구가 익는 계절이기도 하다. 요즘 한창인 살구를 디저트로 즐기는 것도 괜찮은 조합이 되리라.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사람이 한 번씩 먹어도 되는 치즈의 양은 어느 정도냐?“ 그러면 나는 그이에게 되묻는다.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1인분이 어느 정도냐?“ ”180~200g이다“ 바로 그거다. 치즈와 고기의 주성분과 함량이 비슷하다. 고기는 주성분이 단백질과 지방이고 치즈의 주성분도 단백질과 지방이다. 성분 함량은 고기의 경우 단백질 20%, 지방 30%이다. 치즈는 단백질 35%, 지방 40%이다.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때 1~2인분을 다른 음식과 함께 먹듯이 치즈도 그런 정도의 양을 다른 음식과 함께 먹으면 된다.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에 치즈를 180g~200g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그런데 피자, 라클렛, 퐁뒤, 와인 안주로 먹는다면 그게 가능해진다.

​본론으로 당신이 감자와 치즈를 먹는다면 아마 100g의 치즈는 너끈히 먹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치즈, 감자, 꿀의 삼각편대와 포도주를 놓고 먹는다면 200g도 수월하게 먹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러면 치즈는 무엇이냐? 여기서 바로 치즈가 식량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1990년, 취리히 근방 포르흐(Forch) 마을,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1년 가까이 알고 지낸 스위스 원주민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들이 어렸을 적에 오직 10kg 치즈 몇 덩이와 삶은 감자로 기나긴 겨울을 난다고 했다. 스위스인들이 바라보는 치즈는 식량 그 자체였다. 나도 치즈를 소개할 때 백 년 이상 저장할 수 있는 식량자원이라 한다. 나는 '쌀.보리 오천 년, 치즈 유제품 오천 년'이라는 말도 지어냈다. 지난 5천 년간 한민족을 먹여 살린 식량이 쌀.보리였다면 미래 5천 년 식량은 치즈와 유제품이라는 뜻이다. MZ세대가 가장 즐기는 것이 치즈이기 때문이다. 감자의 계절을 만나 감자와 치즈를 이야기하다가 식량에 관한 생각에 까지 확장되었다.

그런데 이 귀한 식량자원(경질치즈)이 20년 전부터 제조되었다가 이제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수입품 치즈가 우리 치즈 시장을 점령해버린 탓이다. 이제라도 '식량만은 다른 나라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정부는 물론 우리 모두 굳건히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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