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910호

故 주석중 교수 (사진=서울아산병원)
故 주석중 교수 (사진=서울아산병원)

사회적으로 적해(積害)를 끼쳤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통적 의미와 지위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리가 동경(憧憬)하고 모두가 선호(選好)하는 '사'자 직업(職業) 중 변호사는 선비 사(士), 판.검사는 일 사(事). 이와는 전혀 다르게 그 옛날부터 의술(醫術)을 지닌 사람에게 스승 '사(師)'를 쓰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존경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사(醫師)였던 주석중(62)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 흉부외과 교수가 출근길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숨지자 전국 곳곳에서 애도(哀悼)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에게 수술 받았던 환자와 그 가족들은 황망한 비보(悲報)를 듣고 각종 SNS에 추모(追慕)의 글을 끊임없이 올렸다. ​18년 전 "아버지를 수술해 주신 분, 많은 이를 죽음에서 살려주셨는데 본인은 허망하게 가셨다."라며 애통(哀痛)해 하기도 했다.

​주석중 선생님은 6월 14일 사고 당일 새벽에 응급수술을 마친 뒤 잠시 귀가(歸家)했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던 중 참변(慘變)을 당했다. 응급 환자가 왔다는 연락이 오면 바로 달려가기 위해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살았다는 고인(故人)은 환자진료(患者診療)를 최우선으로 실천하는 의사(醫師)였다. 故人에게 치료를 받고 새 삶을 찾았던 환자들은 20일 병원 영결식장을 찾아 조문(弔問)하며 슬퍼했다. 의료계에서는 대체불가능한 의사였다며 안타까워했고, 그의 헌신(獻身)은 물론이고 "품성(品性)이 매우 좋으셔서 별명이 예수님"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애석함과 울컥함이 뒤섞여 눈물을 감추기 힘들었다.

​문득 선교사(宣敎師)들이 세운 전주 예수병원 기념관의 글이 생각났다. “우리는 봉사 하나님은 치료“ 모사재인 모사재천(謀事在人 謀事在天) ‘인간이 할 수 있는 치료는 최선을 다하고 의술(醫術)의 결과는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말이 아닌가. 필자(筆者)는 전주 예수병원에서 13세와 35세의 어느 봄날 두 번씩이나 입원(入院)하여 각각 6개월, 3개월 동안 큰 수술을 받았다. 몹시 아팠던 기억은 희미하지만 "제발 살려만 주세요."라는 비명(悲鳴)의 외마디는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 이후 흰 가운의 醫師를 대하는 筆者의 시각은 언제나 선생님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인문학을 공부하는 도반(道伴)으로 만났다. 동국대학교 일산 한방병원 김동일 원장이다. 그는 여성 한의학에서 일가견(一家見)을 이룬 한방의학의 대가(大家)로 등단을 준비(?)하는 시인(詩人)이며, 뼛속까지 인문학이 스며있는 너무나 인간적인 醫師다. 치료를 받은 환자가 완치되었다고 감사를 전해도 조금 '괜찮게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의술보다 먼저 정성을 앞세운 것이라는 증표(證票)다. 동국대학교 한방병원에 안착(安着)하기까지 여섯 차례의 근무지를 따라 무려 30여 년을 따라온 환자도 있을 정도로 마음이 온후(溫厚)하고 생각이 순수한 명의(名醫)다. ​筆者는 김동일 醫師선생님에게 애인처럼 만나고 싶다면서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는 가당치 않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의미심장(意味深長)하게 슬쩍 웃고 있었다.

요즘 의사 열풍이 초등학생까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지만 그 길은 알고 보면 꽃길이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고소득 직업이라지만 가족이나 부인에게 좋은 직업일 뿐이지 일종의 형극의 길이다. 가끔씩 현직 의사들이 SNS에 올리는 의료사고나 고충 등 자조적(自嘲的)인 글들을 목격하고는 무척 안쓰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스스로 직(職)이 아니라 업(業)이라는 운명(運命)이나 사명(使命), 즉 천명(天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최고급 3D 업종이다.

​중국에는 전설의 명의(名醫), 조조의 두통을 치료하고 관운장의 다리를 수술했던 위(魏)나라 편작(扁鵲)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의 인물로 동의보감의 ‘허준’이 있다. "약효(藥效)가 있는 약을 지음(調劑)에 있어 그 비결(秘訣)은 정성이 반(半)이다."고 했던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비인부전(非人不傳), 인간 됨됨이가 갖춰지지 않은 자에게는 가르침을 줄 수 없다."면서 아무나 가르치지 않았다. 국보 319호 세계기록문화유산 <동의보감>을 남긴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醫師의 사표(師表)이며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다.

​'사기(史記)'를 지은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 ‘보임안서’에 아래 내용의 글귀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전혀 뜻밖의 교통사고로 태산보다 무겁게 홀연히 세상을 떠난 醫師, 고(故) 주석중 교수의 엄숙한 영전(靈前)에 흰 국화의 '師'를 올리며 명복(冥福)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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