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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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 부지런히 정원 손질을 했다. 정원 손질, 이렇게 표현하니 무슨 창의적인 일을 하여 보람도 느끼고 재미도 보고 기분도 상승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이제는 진녹색으로 무거워 보이는 잎새들을 거느린 나무와 흐드러지게 피워낸 꽃 사이에서 나도 질세라 자리다툼하는 잡풀들을 뽑아내는 작업이다. 요즘의 잡풀은 나도 질세라가 아니다. 너네가 사랑하든 말든 나는 이 계절에서만은 나의 왕국을 만들겠다는 극성스러움이 교만과 막무가내의 신, 독재자의 모습이다. 정원의 주인이 애써 가꾸는 질서의 영토에서 조금만 분위기 파악하여 틈새를 이용한다면 잡풀은 그 생명의 색상인 녹색으로 하여 어느 한 모서리에서 제 한 생은 잘 즐길 수 있으리라 싶건만 그 왕성한 욕심으로 나도 땀 흘리며 그들을 제거한다.

​며칠 후에 오기로 약속한 친구 가족이 있었다. 20년 만의 고국방문이다. 나는 내 정원 자랑을 한 것 같지 않은데 한두 번 지나가는 말로 꽃나무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말은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부풀렸다가 이제 내 집을 방문하는 마당에서는 아름다운 정원을 봐야겠다는 나한테는 좀 부담스러운 말을 했다. 혹 내가 과장하여 정원 이야기를 한 건가 마음이 찔끔했다.

​친구의 이 말 때문에 나는 일주일을 땀 꽤나 흘리면서 잡풀 뽑기를 한 거였다. 자랑 끝에 쉬슨다는 말이 생각나서였다. 시골의 밭일에는 필수인 작업용 비닐 방석을 엉덩이에 매달고 두 손을 휘휘 저으며 호미 들고 일을 했다. 나는 일하는 시간에는 미친 듯이 속도를 내며 일한다. 천천히 일하지는 못한다. 두 시간 정도 일하고 나면 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의 집중 노동이다. 한 주 정도 그랬더니 정원은 오월의 새아씨, 새벽이슬처럼 금방 허물어질까 조바심이 날만큼 이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일한 후 허리 쭈욱 펴면서 한 내 말은 이제 아름다운 꽃도 정원도 나에게 중노동을 강요하니 귀찮기도 하다.

​손님은 그렇겠지, 아니면 처음 보는 객체에 대하여 새로움과 다름으로 특별한 미를 발견한 건지 친구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원에 탄성을 발한다. 우리 정원에는 특별한 나무도 꽃도 없다. 아주 흔한 식물들이다. 비쌀 것도 없고 희귀하지도 않다. 너른 시골 정원인데 생존에 까다로우면 우리로서는 그런 식물들의 까다로운 조건을 맞출 수도 보살펴 줄 힘도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조금만 돌보아주면 고맙다고 잘 자라는 종만 심는다. 그래도 힘들다.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말에 칭찬받은 코끼리 마냥 내가 춤을 춘 모양이다. 잡풀 정리 물주기 가지치기 등등 사소한 일 같은 것이 모여 내게 강요한 노동으로 정원의 나무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마음이 살그머니 빠져나가고 내 정원에 대한 자부심과 아름다운 꽃이 나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 아이들이 경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이웃들에게 환호를 받는 것처럼 뿌듯하다

갑자기 비 내리는 날에 이 나무는 저리 옮기고 저 나무는 잔가지 좀 쳐줘야겠다는 아이디어들이 내 머리를 바쁘게 만든다. 나는 늘 보아서 모르지만 정말 아름다운가 보다. 내가 가진 걸 너무 과소평가한 건 아니었던가 반성하니 금방 정원의 아름다움이 왕궁의 비원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

역시 이 땅은 인간이 주인이다. 꽃이 그 아름다움으로 매력을 풍기지만 사람이 느끼고 감동하지 못하면 아름다움의 생명이 없다. 사람은 쉽게 무감각해진다. 자연이 피워내는 본래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언제나 새롭게 감동하는 사람들의 감동이 필요하다. 나는 내 정원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동해 주는 사람들이 나의 큰 활력임을 안다. 곧 방문할 내 아들 가족이 너무너무 좋아하기를 바란다. 또 중노동을 기쁨으로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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