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부터 2012년 2월 28일까지 여고생들과 함께했다. 주로 2학년을 가르쳤는데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예쁜 나이 18세 소녀들이었다. 맑은 눈망울에 솜털 보송보송한 뽀얀 피부의 소녀들은 정말 예뻤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사랑스러운 그녀들과 하루종일 함께한다는 것은 축복의 시간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나는 애초부터 권위를 내려놓고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하고자 했다. 50대인 어느 날 교정에서였다. 서너 명의 학생들과 마주쳤는데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예뻐지셨어요." "너희들 늙은이 놀리니?" "아니요, 희롱하는 거예요." 우리는 마주 보며 일제히 박장대소했다.

​컴퓨터실에서 이제 막 수업 시작 전이었다. 옆에 선 내게 몸집이 작은 한 학생이 물었다. 짐짓 진지해 보이던 그 학생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 예뻐지시는 약 드셨어요?" 순간 오늘따라 내가 더 예뻐 보이나 싶었던 나는 황홀해서 살짝 콧소리를 집어넣어 길게 대답했다. "왜~~?" 그러자 그 학생은 시치미를 뚝 떼며 대답했다. "아니요. 부작용이 난 거 같아서요." 아이고야 한 방 먹었네.

​교사는 학생들에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가 교재이다.​ 어려서부터 레이스, 러플 등의 샤방샤방한 디자인에 핑크, 아이보리, 보라 색상 등의 원피스를 즐겨 입던 내 별명은 P여고에서 '공주 선생님'이었다. 학교 앞 가까운데 집이 있기에 걸어다니는 내게 한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자가용을 타셔야죠. 걷는 게 뭐예요."

1980년대 후반이었다. 집을 이사해서 직장에서 멀어졌기에 남편이 운전하는 '프라이드'로 출퇴근했다. 프라이드에서 내리는 나를 본 학생이 말했다. "에이 선생님 적어도 그랜저는 타셔야지 프라이드가 뭐예요." 예쁜 옷을 좋아하는 내 옷차림이 현실과는 동떨어졌기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제자들에게 늘 문학 얘기를 들려주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어서였을까?

"선생님한테서는 늘 아가씨 필이 나요." 2학년 교실에서 만난 명랑한 성격의 그 학생은 62세의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내 옷차림을 보고 범털인줄 알고 있는데 알고 보면 개털인데....외모 지상주의인 우리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럴 듯한 옷차림이 이젠 내 트레이드 마크 내지는 캐릭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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