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손주녀석이 학교에서 체험학습용 강낭콩 4알을 가지고 왔다. 조그만 화분에 곧 바로 심어서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는 며칠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무심코 창가를 내다보니 어느새 싹을 틔워 잎이 몇 장이나 나와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손주에게 보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싹이 트고 잎이 났다는 친구는 몇 명 뿐이더라고 했다.  얼마 후 콩 줄기에서 하얀 꽃이 제법 많이 피었다. 그리고 꽃이 지더니 아주 작은 열매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매일 정성들여 물을 주고 내가 먹는 보약도 한 방울씩 남겨서 물에 희석시켜 주기도 했더니, 콩 열매는 점점 길죽해지면서 속에 콩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 자연의 신비여! 우주의 신비여! 생명의 신비여!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콩이 여물기까지는 꼭 필요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었다. 땅의 기운이었다. 땅의 기운을 받지 못한 콩은 속에 알은 비치는데 매일매일 들여다봐도 도대체 영글지를 않았다. 그러다 하나씩 누렇게 변하면서 시들시들 말라버렸다. 콩꽃이 피었을 때 쯤 바깥 화단에다 옮겨 심어 주었어야 했나 보다. 그랬더라면 아마 제대로 영글었을텐데 조그만 화분, 거기서도 수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과 무지라니....안간 힘을 쓰던 애기콩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나에게 "바보!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이제 알겠어?" 하는 듯 시름시름 스러져갔다. 세상 만물은 그렇게 꼭 필요한 그 무엇 하나만 빠져도 완성될 수 없다는 진리를 콩 몇 알에서 또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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