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30분 혼잡한 버스 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미처 오르지 못하고 닫혀 버린 버스에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다. 어찌 된 셈인지 버스 안은 평소엔 찾아도 안 보이던 초등학생과 집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내려야 할 곳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이들이 "내려요!"라고 소리치니 금시계, 금목걸이, 금팔찌로 치장한 화려한 차림의 노인이 투박하고 우렁찬 소리를 질러댄다.

몇 년째 마을버스를 타고 오르내렸지만 오늘 같은 날은 없었다. 편히 앉지도 못하고 내가 든 짐의 무게만으로도 피곤한 몸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나의 꾸물거림으로 길어진 하차의 시간이 당연하다는 듯 기다려주는 학생이 너무 이뻐보였다. 건장한 체구와 믿음직한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따뜻했다. 맑은 하늘이 보이고 6월의 바람이 부는 오늘이 참 좋다. 자신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일에 목소리를 높여 기사에게 상황을 바로 잡을 기회를 주는 어른, 여전히 혼잡한 버스에서 허둥대며 하차 카드를 대는 모습을 기다려주는 나이 어린 청년, 두루두루 고맙다. 뒷자리에 앉아 조잘거리던 꼬맹이들도 각자의 집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또한 얼마나 정겹고 희망찬 모습인가.

​오후 6시, 나는 강을 건너 동생이 건네준 김치를 들고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이 시간도 서울의 사람들이 다 모인 듯 숨쉬기 조차 힘든 상황에서 경노석에 앉았던 분이 슬며시 일어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앉은 나는 4정거장째 계속 서있는 그녀에게 자신이 내려야 할 곳에서 양보한 자리인 줄 알았다며 감사를 전하자 그분은 오히려 미안한 듯 빈자리가 있어 앉았고, 연배가 조금 더 있어 보이는 내게 양보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웃는다. 나는 오늘 다시 깨달았다. 우리는 자신의 형편과 자리를 지킬 때 아름답다는 것을, 내가 행복할 때는 타인의 배려가 있고 또한 배려하는 사람에게는 미소가 따른다는 것을.....

​10번 출구를 지나 다시 집으로 향하는 시간, 오늘 버스와 지하철에서 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미소가 깃든 따뜻한 인간애가 민들레 홀씨처럼 우리들의 일상에 퍼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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