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아들 며느리가 이렇게 말하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언니라는 호칭은 내가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 후배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고, 나도 선배들을 부를 때 그렇게 호칭했다. 아마 이 호칭은 학생 신분일 때 선후배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호칭이 아니었나 싶다. 가정에서 자매간에서도 사용하긴 하지만 사회에서는 학교란 커뮤니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호칭이라 기억하는데 제주도에서는 나이 든 후임에게도 아주 쉽게 자주 듣는다. 처음엔 좀 뜨악스럽게도 느껴졌지만 이제는 친근감도 있고 더 젊은이 대우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는 호칭만이 아니다. 상당한 나이 차가 있음에도 경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 않다. 나에게 경어를 사용하는지 반말을 사용하는지 하대를 하는지도 구분되지 않는다. 그냥 순박하고 거리감이 없다는 감만 든다. 행동에서는 철저하게 손윗 사람 대접을 하니까 그렇다.

​몇 해 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아 몸이 상당히 약해진 60대 중반이다. 수영장에서 만나기 시작한 지가 거의 10년에 가까워 오는 듯하다. 자주 만나니 이제는 운동하면서 별별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 중에는 제주도가 육지보다 더 중히 여기는 제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최근에 아무래도 제사가 건강상 부담이 많아 아들 내외와 의논을 했단다. 곧 제사를 아들이 맡았으면 좋겠다고.....그랬더니 아들 내외의 답이 "어머니, 건강이 견디지 못하면 그렇게 할게요. 그렇지만 제사에 다른 가족은 초청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식구만으로 제사드리겠습니다." 제사에 형제도 사촌도 없는 자기 식구들만의 제사가 제사일까? 어리벙벙하여 "아직은 내가 움직이니 내가 할 수 있는 날까지는 내가 할게. 이 문제는 다음에 의논하자." 그러고 말았단다.

​지난 구정에 나는 다른 이웃으로부터 제사상을 처음으로 주문하여 치렀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은 오래된 제사라면 산 사람도 좀 편안하게 그렇게 해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살아있는 사람 편들기에는 약간 주저된다. 제사의 의미가 무엇이든가. 돌아가신 분의 영이 찾아와서 잡숫고 가는 건 아니잖나. 고인의 뜻을 받들어 고인의 후손들의 가족 인정을 더 공고히 하는데 의미를 둔다면 장남이나 책임을 맡은 핵가족 단위로 조촐하게 자기들끼리 제사를 모신다면 제사가 무슨 의미이든가. 세상이 바빠지고 모든 게 능률면으로만 돌아가다 보니 앞으로의 제사 형식은 많이 달라질 것이고 또 달라져야 하기도 한다. 그래도 진짜 알맹이는 빼서는 안되지 않나 하는 고리타분한 생각도 해본다. 차라리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씩 음식을 분담하여 한자리에 모이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도 생각해 봤다. 이미 그런 가정은 많다고 알고 있다. 제 식구로만 제사 지나겠다는 아들의 말을 하는 이웃에게 나는 그건 아니지 하는 말로 부정적인 의견은 말하지 않았다. 요새 젊은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만 해도 고맙지 뭐, 하는 말로 얼버무렸다. 현실적으로 그렇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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