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가 버리게 되는 물건에도 나름 여러가지 사연들이 남겨져 있다. 매일 쓰는 수건이지만 남다른 마음이 담겨있는 것들이 있다. 수건에 쓰여져 있는 글귀들을 보면 그걸 왜 받게 되었는지가 인쇄되어 있기도 하고 수놓여 있는 그림이 말해주기도 한다. 나는 흰색 수건은 금세 더러워져서 잘 선택하지 않게 되고 파란색 계통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살 때는 파란색을 잘 고르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해서 꽃그림 수건도 잘 고른다. 어느 정도가 되면 걸레로 버려지는 수건들 속에서 알 수 없는 아까움이라기 보다는 왠지 남겨두려는 마음이 동하는 두개의 수건이 있다. 하야니와 뽀야니다

​하나는 파리의 에펠탑이 새겨져 있는 보통보다 길이가 짧은 작은 하야니다. 혼자 파리 출장을 와서 느긋하게 혼자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워싱턴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지금 러시아 여행 중인데 넌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며?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자기 여행 일정을 자세히 보니 파리에 이틀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했다. 우린 갑자기 수다에서 진지한 의논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론은 내가 묶고 있는 호텔로 친구가 오기로 결정되었다. 나는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고 친구가 움직이는데 자유로워 그렇게 정했다. 우리는 시간과 날짜를 다시 확인해가며 신나는 돌발행동에 호기심 천국으로 몰입되었고, 싱글벙글 웃어가며 전화를 끊었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멋진 일도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둥둥 떠서 잠마저 설쳤었다. 친구와는 중학교 때부터 순진한 우정을 쌓은 사이이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무슨 일이든 자신만만한 친구였다.

친구랑 만나 이틀 밤을 수다로 지새웠고 이틀 동안 가고 싶은대로 먹고 싶은대로 먹어가며 걸으며 서로가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웃고 즐겼다. 영어로 소통이 되니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외국에 왔으니 웃기는 일도 만들어 가며 보내기로 했다. 나보다 모험심이 강한 그녀는 일부러 음식점에 가면 애써 모르는 불어로 아주 이상한 메뉴들을 골라 먹으며 웃겼다. 제일 웃겼던 것은 중앙에 나뭇가지처럼 주렁주렁 감이 달리듯 접시가 놓여있는데 그 접시마다 작은 조개들이 전부 날것으로 놓여 있는 완전 작품이었다. 그녀는 맛이 괜찮다며 먹어보라 했지만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 먹은 후 세상 여러 곳을 다녔어도 이런 요상한 음식을 시켜서 먹은 건 처음이라며 얼른 커피를 마시던 그 얼굴이 지금 생각해도 쿡쿡 웃음이 나온다. 우린 그렇게 짧은 만남을 한국도 미국도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의 멋진 기억을 지니게 되었다. 만남은 또 이별이 있는 것, 서로 기념하자고 짐이 안되는 작지만 쓸모있는 걸로 이 수건을 두 개 사서 각자 가졌었다. 그러기에 버릴 수가 없는 추억이 담겨 있는 수건이다. 곱게 접어서 23년도 넘은 하야니를 간직하고 있다.

두 번째 수건은 한국문인협회에 등단한 후 이화여자대학 동창문인회에서도 활동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봄나들이에 참석해서 즐거운 한 때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내고 왔다. 이제 고령자들은 거의 참석을 못하고 그래도 나올 수 있는 분들은 지팡이 신세를 지고 있다. 자꾸 밀려나는 신세들 속으로 끼어들고 있는 나를 새삼 들여다보니 서글픔 반 행복 반으로 착잡해졌었다. 그래도 전시회를 관람하고 사진도 찍고 환하게 웃어가며 예쁜 꽃들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즐거웠다. 안나온 또 못나온 선배님들 얼굴 그려가며 오랜 세월 탈없이 함께 보내온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도 가졌다. 어느 해인가 회장님이 특별 선물을 했었다. 초록색 이화 마크가 들어 간 뽀야니, 가지고 다니기 편한 수건이었다. 나는 크기가 좋았고 얼마나 애용을 했는지 모른다. 애용하다 보면 버릴 수 없는 따스한 마음이 담기는 거라는 걸 알게 해 준 수건이다. 이제는 낡은 오늘도 무심히 사용하게 되는 수건을 들여다보며 새삼 고맙고 아련한 그리움마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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