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볼안이라는 말이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한다. 이 반대로 책을 책표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 겉과 안 사이의 차이를 표현하는 말들이다. 겉볼안이라면 겉이 그럴싸하면 안도 그럴싸하다는 의미이겠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면 먹기에도 좋으니 반드시 맛이 있을 것이고 맛이 좋으니 건강에도 좋은 자료들일 거라고 해석해도 별 무리는 없겠다. 화려한 책표지와 내용은 다르다는 겉과 안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겉이 요란할수록 그 속의 내용은 별 볼일 없는 책이 있는가 하면 겉이 수수하거나 초라하여도 책 안에는 영혼을 흔들만한 힘을 가진 내용도 있다.

책이나 먹거리만 그러하겠는가. 듣는 강의도 그렇다. 강의자의 음성이 파열음에 말의 끊는 구간도 일반적이지 않아 내 귀에서 이미 괴로움을 받는 강의가 있다. 처음 귀에 거슬리니 귓바퀴에서 맴돌다가 사라지지만 참고 자세히 강의 내용에 집중하면 상당히 흥미가 생기고 흥미 다음으로 따라오는 집중력도 생겨 강의를 전부 잘 청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내 집중력에 무리가 생겨 강의 시간 이후에 나는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강의 내용에 내가 매료될수록 강연자가 좀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번에 나는 재미없는 강의를 강연자의 싱글생글 무게없는 미소에 유혹 받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시쳇말로 골 때리는 강의에 흡인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걸로 알고 잘 들었다. 그야말로 들었다. 이해한 건 아니다. 컴퓨터의 깊은 이론 강의인데 다 만들어 준 그것도 이디엇 프로프( idiot proof )로 잘 발전시켜 시판하는 컴퓨터도 잘 사용할 줄 모르는 내가 기본 과학적인 근거와 이론을 알 턱이 없다.

​대담자가 문과 출신이라 그랬던가 나보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나았다. 전공이 다르고 워낙 전문적인 이론을 실용화 한 부분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는 대담자의 과학과의 거리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대담자가 이해 못 하는 부분을 거듭 질문했지만 강의하는 분은 아주 친절하게 생활주변 현상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어 나도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혔다, 처음에는 강의자가 성큼성큼 이론의 깊이로 들어가게 방해하지 말지 대담자가 왜 교수님의 발목을 잡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역시 그 느린 속도 덕분에 나의 이해 범위도 넓힐 수 있어 좋았다. 댓글에서 어느 분이 나와 같은 생각을 표현했다.

​나는 그 강의자가 내 아들이었으면 했다. 바쁜 직장과 제 가정 사이에서 나한테 싱글싱글 태도로 변화하는 것들, 모든 것들, 모든 과정을 느리게 상세히 기본부터 설명해 주었으면 나는 세상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은 새로운 것에 대한, 숨가쁘게 나오는 새 이론들, 새 이론을 근거로 나오는 제품들, 사회현상들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뇌세포가 많이 놀고 있는데....

​그래, 아들에게 기대지 말고 나의 속도로 가르쳐 주는 강의를 찾고 내 이해의 속도로 저작한 책들을 찾아야지 아들 타령만 해서야 멋있는 시니어가 못되지 하면서 새삼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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