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 다녀왔다. 담양 하면 떠오르는 대나무를 아주 많이 보고 왔다. 맑은 공기 덕분에 기분이 좋아짐은 물론, 나른했던 몸도 기운이 솟는 듯 했다. 오늘의 아쉬움은 다 이유가 있는 거라니 그래서 인내한다. 그리고 훗날 깨닫는다.

고향 이타카를 그리던 오디세이처럼 짧지 않은 객지 생활에 난 늘 나의 고향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자리잡고 사는 곳은 생각지도 않은 남쪽나라 광주이다. 큰 나라 한 모퉁이에서는 잘 살던 내가, 작은 나라 큰 도시에선 조금 힘들었다. 난 늘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고 지인과 친구들과의 전화로 많은 시간을 흘리곤 했다. 시간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이젠 이곳에 감추어진 보물을 발견하고 자족하며 기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감사하다. 감사함으로 이끄는 요인 중엔 좋아하는 자연을 쉽게 누리고 볼 수 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담양은 정말 소박하고 친근한 곳이다.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서 있는 숲길을 들어서면 이미 도시는 저리로 밀려있어 마음엔 초록의 바람이 스치는 것을 느끼곤 한다. 오늘은 그 담양의 유명한 대나무가 소리내며 반기는 '대나무테마공원'을 다녀왔다. 대숲 바람이 있고 죽림욕도 할 수 있는 곳, 대밭으로 이어진 긴 사잇길을 말없이 걸으며 땅에 수북이 떨어진 댓잎을 밟고 지날 땐 참 평화란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개인이 40년을 거쳐 이루어낸 곳이어서 일까? 왠지 주인의 외길 고집이 숲에서 느껴지고 사이사이에 많은 사진과 시를 깔아 놓은 덕에 한숨 쉬고 가는 산책길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휘어질래, 휘어지며 살래, 누구는 대쪽같이 살고 싶다지만'이라고 쓴 시를 보면서 나처럼 이러쿵저러쿵 사는 시인이 고마웠다. 부족한 사람도 한몫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세상 보는 눈이 반가웠다. 이미 절기를 넘어간 죽순이 저만치서 보일 땐 지난번 재래시장에서 보았던 죽순을 사다가 반찬으로 올리고 싶고 삶은 죽순을 잘게 썰어 밥을 지어 보고도 싶어진다. ​대를 보니 '우후죽순’이라는 사자성어도 생각이 난다. 비가 온 후 여기저기 솟는 죽순을 빗대어 어떠한 일이 여기저기서 일시에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말 아니던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에 생긴다는 죽순을 나도 언젠가 꺾어 본 적이 있다. 시댁 뒷산에서였다. 이미 커버린 대나무 밑으로 여기저기 솟아있던 많은 죽순들은 생각보다 쉽게 땅에서 뽑히고 또 연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감추어져 있음에 놀랐다. 몇 분 머무르지 않았던 대밭에서의 서늘함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중국이 원산지라는 대나무는 그 종류가 세계적으로 1.2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활, 화살, 창은 물론 대금, 피리 등 악기 만드는데 쓰였을 뿐 아니라 먹거리도 제공하여 우리에게 친숙하다. 또한 4군자인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예로부터 동양화의 소재로도 사용되었고 사철 곧게 피어 있어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도 인식되는 대나무다. 유명한 윤선도의 오우가에 등장하여 대의 성질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되기도 했다. 1년 내내 지지 않는 잎을 갖고 있는 대나무,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그 대나무.....웬일인지 나는 어느새 담양의 대숲에서 불던 그 바람과 고요를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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