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서 난데없이 비를 만났다. 너무 이른 시간 아직은 먼동이 트기 전이라 구름 낀 하늘은 미처 보지 못한 탓이다. 아무리 동네길이라도 비가 올 듯 하면 집 둘레를 산책하여도 충분한 운동이 되는데 괜히 멀리 왔나 했다. 다행히 비는 요란하게 시위만 하고는 시름시름 물러났다. 보슬보슬 촉촉하게 겉옷만 조금 적시고 귀가할 수 있었다.

​미처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전화가 울린다. "꽃이 만발이니?" 익숙한 음성이고 반가운 음성이고 오랜만의 음성이다. "만발이라 화성을 이루고 있다. 궁금하면 날아오던가 왜 묻기만 하노." "뭐 재미있는 일 없니?" "재미있는 일이라니 늘 그렇지. 특별할 게 뭐 있겠어. 활동이 없는 사람이" "이달은 가정의 달이잖아. 사회활동이 아니라 가족관계에서 받아야 할 이벤트가 많은 달이니까 묻는 거지." "그러네 너네는 부부가 교직에만 있었으니 줘야 할 것도 많지만 은근히 받을 것도 많겠다." ​이 친구 실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참지 못하고 내가 일찍 움직인다는 걸 알고 이른 시간부터 전화한 거였다.

"B 있잖니? 어버이날에 자녀들이 엄청 큰 이벤트 날렸다고 자랑이 자랑이 봇물이야. 그 이야기 한참 듣느라 한나절 보냈네. 근데 나 그 이야기 듣고 머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큰 물동이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더라." "나이 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자식자랑이라는데, 난 그말에는 늘 거부했거든. 부모가 자식자랑 못하면 누구 자랑하라는 말인가 라고....근데 이번에 그말, 자식 자랑하지 말라는 말의 진의를 알았어." "내 자식들은 그러지 못하여 새삼 섭섭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백년 농사는 완전히 실패했나 하는 인생 낙오자란 딱지도 생각하게 되고." "좋겠다. 축하한다. 라며 부글거리는 속 달래면서 말은 그렇게 했다."

"​자식들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면 그걸로 충분한 효자라면서 이건 네 말이다. 너네 남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잖아. 그럼 됐네." "B 말이야. 최근에 큰 재산 자녀들에게 줬다는 말이 있더라. 핑퐁 효도일 수도 있지, 크게 갔으니 크게 오고, 큰 게 왔다 갔다 했으니 더 잘 보이고 더 그럴 듯하고 더 진심으로 보이고 더 멋있어 보이는 거 아닐까? 자식 자랑도 괜찮은데 부모들은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경우가 있더라. 이 경우는 의미도 없고 쓸데없는 자랑이 아닌가 한다."

​역시 너와 대화 잘했다. 그렇잖았으면 괜히 애먼 내 아이들한테 내 친구 자식들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듣기 싫은 말 몇 마디 했을 거고 내 점수도 깎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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