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초록바다다. 아침에 창을 열다 코로나 기간 동안 생각지 못했던 아니 마음은 있으나 갈 수 없었던 찜질방이 떠올랐다. 이 화창한 봄날에 어울리지 않을 것도 같았으나 맥 커피로 아침을 들고 서둘러 준비를 마치니 점심은 초록의 정원에서 즐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늘 다니던 익숙한 동네 찜질방은 폐업했다고 들은 지라 인터넷으로 꼼꼼히 살피고 찾아간 곳은 더 넓고 정리도 잘 되어있고 소문 탓인가 가끔 외국인도 눈에 띈다. 이른 시간이라 혼잡하지 않은 사우나 룸에서 3년 만에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밖이 환히 보이는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 초로의 여인이 파랑색 때밀이 수건을 양손에 들고 열심히 몸을 문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다. 손이 닿지 않는 뒤편을 밀어야 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자 난감해 하며 민 곳만 계속 밀고 있는 것이다. 너무 밀어 멀리서 봐도 선연한 붉은 색의 딱한 살이 보인다.

잠시 후 그녀는 뒤를 돌아보더니 한 사람에게 무어라 말을 걸다가 다시 같은 곳에 손을 댄다. 나는 문을 열고 그녀에게 다가가 내가 등을 밀어주겠다고 하니 고맙다고 고개를 숙인다. 별 것도 아닌 때밀이를 끝낸 후 비누칠과 따스한 물로 휘리릭 마감을 하니 일하는 곳에서 땀이 많이나 때가 많이 나온다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한다. 1분이면 되는 작은 정성을 나누지 않고 돌아서는 여성이 괜히 얄미웠고 어디선가 밤시간에 노동을 했을 그녀가 측은했다. 5분도 아닌 1분의 나눔으로 6번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문득 딸들에게 들려주려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타인에게 도움 받은 것을 잊지말고, 너희가 누군가에게 베푼 사랑과 도움을 절대로 기억하지 마라." 내가 건강한 두 팔로 그녀의 등을 밀어줄 수 있는 오늘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넉넉한 토요일 오후, 우리는 초록의 숲을 거닐며 점심과 차를 마시고 우연히 2023년 '서울놀이마당 상설공연'을 만났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석촌호수의 바람에 노곤한 몸을 기대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해금연주를 듣고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의 시간이 아닌가 한다.

남편의 귀가 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어젯밤, 삼손의 힘이 나오는지 큰 박스를 힘겹게 들고 들어온다. 10인용 전기밥솥이다. 내가 기뻐할 거라고 선물로 받은 무거운 박스를 갖고 왔지만 내겐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간소화시켜야 하는 현실이 때론 싸하게 가슴에 비가 내리지만 어쩌랴. 난 마침 계획된 교회의 '온 가족 잔치' 상품으로 누군가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너무 기뻤다. 아, 감사하게도 남편은 아주 적당한 시간에 노력봉사를 해준 것이다.

​말이 늦어 은근히 걱정하는 내게 손자가 '할마'라고 소리치며 손을 흔든다. 이제 첫 돌이 되는 손녀도 수없이 전화기에 입을 갖다 댄다. 이런 것이구나. 할머니의 기쁨이...5월에도 감사가 하나로 끝나지 않은 것이 큰 기쁨이요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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