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조용한 연휴, BBC와 CNN을 통해 장엄하고 화려한 영국 왕의 대관식을 보았다. 패키지로 다녀왔던 영국 여행에서 아쉬움이 많은 터라 버킹엄 궁과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마차를 타고 가는 국왕부부를 환호하는 군중들과 함께 도시의 모습도 만나고 화면 속에서나마 장엄하면서도 오랜 전통에 기반을 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화려한 2시간 가량의 예식은 충분히 나를 매료시켰다.

나는 영국의 왕이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로서 왕의 정당성을 강조했다고 하는 것을 이번 예식을 통해 알게 되었다.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고 성경에 손을 얹고 서약하였으니 낮아진 모습으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섬김의 모습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왕이 되기를 바란다.

​주블리 마차를 타고 왕의 행렬을 마친 뒤 작년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65년 만에 정식 군주로 등극하였으니 참으로 긴 기다림이었다. 9살에 왕세자가 된 후 70이 훨씬 넘어 드디어 444개의 보석이 박힌 왕관을 착용하게 된 것이다. 켄터베리 대주교의 집전으로 시작된 행사는 '실용'에 초점을 맞춰 70년 전에 비해 대관식 규모를 간소화했고, 사상 처음으로 여성 사제에게 성경 낭독을 맡기는 등 '다양성'도 부각되었다.

찰스 국왕이 700년 된 대관식 의자에 앉아 왕권을 상징하는 보주와 홀을 받는 모습 또한 낯설고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독창은 물론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원들의 영어를 포함한 이해하기 어려웠던 웨일즈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어로 연주한 찬송가 또한 일품이었다. 대관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 등 국가원수급 인사 100여 명을 포함해 203개국 대표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올해 나이 만 74세로, 영국 역사상 최고령 대관식을 치른 찰스 국왕 앞에는 군주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 영 연방 이탈 움직임, 가족 간 갈등 등 안팎의 위기를 수습해야 할 만만치 않은 숙제도 가로놓여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이번 대관식 비용이 최소 1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1천7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그 어마어마한 비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TV 앞에 앉아 방송을 보며 이젠 천국의 별이 된 유순하고 아름답고 수줍은 미소가 일품이었던 여인,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의 엄마였고 영국인은 물론 50억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다이에나가 생각나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그녀와 찰스 왕세자와의 동화 같은 결혼식 때 난 20대였다. 그 많은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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