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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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바람이 분다. 많이 분다. 습기는 없다. 습기 없는 바람은 바로 봄바람이다. 따스하고 햇빛도 강렬하고, 봄바람은 태양열의 전도체로서의 역할도 잘했나 보다. 전체적으로 따스함이 입체적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온통 집을 뒤집었다 이불도 봄 이불로 바꾸었다. 겨울 이불은 세탁하여 이불장 구석 깊이 얌전하게 보관했다. 그랬는데 바람이 슬금슬금 습기를 먹는다. 스펀지처럼. 대면대면한 얼굴로 전혀 바뀌는 환경을 내색하지 않는 포커페이스다. 아직은 우리 땅이 완전히 태양의 온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을씨년스러운 기온이 잦아든다. 예기치 않게 급소를 한 방 얻어맞는 기분인 이런 추위, 솔솔 몸 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는 겨울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친구가 얼른 한다는 말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더니 정말 잔인하네" 한다. 티 에스 엘리엇 작품 황무지의 첫 구절인데 잔인한의 의미가 4월의 기후일 리는 없다. 1차 대전 후의 모든 가치 체계는 무너지고 사회적 카오스 허망한 문화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해설만 들었다. 그 어려운 작품을 읽지도 않고 읽어봐야 이해할 수 없는 좀 먹물든 사람들 사이에서 교실에서의 인용으로 쉽게 암기되는 첫 문장을 약방 감초처럼 일상에 사용했었다. 나도 이 말의 출처는 알지만 내용은 몰라 요즘에야 블로그에서 찾아 본 거다.

​오늘 아침부터는 드디어 바람과 함께 부슬부슬 가는 비가 내린다. 이번 주에는 여러 날 이런 날씨가 계속될 거라는 기상예보다. 그전에 지난 금요일에는 공기에 습기가 배어들면서 안개가 짙었다. 이웃 분이 "고사리 안개"란다. 고사리철에 내리는 비는 고사리 장마라더니 고사리철에 나타나는 안개는 고사리 안개인가 보다. 나름대로 멋진 해석을 했는데 고사리 안개라고 말한 이웃이 고사리가 부쩍 자란다는 의미란다. 생각해 보면 잘 모르면서 나름으로 해석을 잘한다. 알만한 분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 식으로, 대화 중에 또 내가 절대로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틀렸음을 알았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유명한 농학자가 우장춘 박사라고 알았다. 이건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우장춘 박사가 이룬 학문적 이론으로나 농업현장에서 이룬 업적은 지대하다. 식물 성장에 대한 논문은 세계 학회에서 인정받는 위대한 학자이긴 하지만 씨 없는 수박은 일본인 농학자의 작품이란다. 처음 일본에서 귀국하였을 때 식물들의 품종 개량은 이런 경지까지 왔다는 확증으로 씨 없는 수박을 생산하여 시범하였던 것이 이런 오해를 불러왔단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씨 없는 수박과 우장춘 박사는 이미 교과서를 통하여 습득하였기에 틀리지 않는다고 우겼는데 나타난 증거는 내가 판판 졌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면, 시간적 공간적인 제한이 없는 기록은 지구를 맘껒 떠돌 테고, 순간 이동으로 퍼져나가는 SNS는 이제 성층권까지는 침투할 텐데 백인백색의 해석은 얼마나 우스운, 때로는 가공할 결과를 가져올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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