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짓무르도록 봄을 즐기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본다는 시인의 마음을 전해 받은 4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말하듯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날이고 오늘이 가장 멋지고 맛있는 축제의 날이다.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봄날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리라.

▶감사 하나

4월의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예술의 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음악회 '백혜선 피아노 리사이틀'을 다녀왔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그녀의 화려한 연주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가진 것이다. 건반을 넘나들며 열정과 섬세함으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 보는 두 시간이 얼마나 감동이었던가. 그녀는 리스트와 슈만이 한국인으로 착각될 만큼 마치 모국어로 표현하듯 자연스럽고 탁월한 해석으로 연주를 한다고 하니 이번 연주에서 내가 느낀 감동이 큰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백혜선 교수는 미국의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날 모차르트와 흑인 여성 작곡가와 한국인 작곡가인 서주리님의 곡을 선사받았다. 그리고 독특한 오리지널리티를 자랑한다는 러시아 작곡가인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연주’를 들으며 러시아 광야를 생각하고 그가 영감을 얻은 건축가이자 화가인 친구 하르트만의 작품이 떠오르는 화면을 응시하며 몰입한 시간은 기쁨과 함께 작품을 이해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어 한층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이삿짐을 도와주던 분이 집에 있는 피아노에 핏자국이 연습의 증거임을 알고 놀랐다는 이야기도 가까운 분을 통해 들으며 우리가 앉아서 듣는 짧은 시간에 담긴 피아니스트의 감추어진 치열한 노력과 인내를 보았다. 그래서 더욱 감사했다.

​▶감사 둘

그녀는 참 예쁘다. 그녀는 참 능력자다. 그녀는 효녀다. 누구나 한 번쯤 돌아다보게 되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그녀는 참 착하다. 그래서 난 더욱 정감이 간다. 우리의 만남은 40년을 이어오고 있다. 세상에서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는 오랫동안 혼자 지내고 있다. 우리는 가끔 통화하고 가끔 만난다. 왠지 친동생처럼 느껴지는 나처럼 그녀도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아주 좋아하는 언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편한 대화엔 가십(gossip)도 많이 등장한다. 인생을 막 알기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도 자주 한다.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생존해 계시는 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느라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어도 자신만의 시간에 늘 인색하다. 일과 가족들을 사랑하는 그녀가 성실하고 씩씩하며 밝게 사는 것을 늘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리고 누리고 살지만, 일을 마치고 빈집에 들어가면 강아지가 홀로 반겨준다고 생각하니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내어 놓고 말한 적은 없다.

그녀가 4월 어느 날 전화를 주었다. 좋은 친구가 있는데 우리 부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여성이냐고 묻는 내게 아니라고 한다. 얼마 만에 듣는 반가운 소식이던가. 우리는 경리단 길에 위치한 곳에서 와인을 곁들인 멋진 식사를 하고 초면인 분과 4시간의 즐겁고 인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다.

나는 참 기쁘다. 이 아름다운 커플이 계속 좋은 만남으로 이어져 서로 의지하며 손잡고 산에도 오르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정다운 시간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녀가 힘이 되어주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 그리고 함께 웃음을 나누는 사람을 갖게 된 것이 내 일처럼 고맙고 기쁘다. 그 밤은 참 이상했다. 반잔의 와인에도 얼굴색이 변하는 내가 잔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져도 서로의 잔을 마주치고 있었다. 차고도 넘치는 신의 축복이 그들의 앞날에 비추어지기를 바란다. 2023년의 4월도 역시 감사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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