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 꽃가루가 날리는 어느 봄날, 어느새 저물어 가는 꽃의 향연을 즐기고 싶어 파주 나들이를 계획하고 주말 혼잡을 피하려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우리의 이웃들도 나처럼 생각하는지 이른 시각에도 여전히 길은 막혔다. 벚꽃으로 유명하다는 골짜기엔 상상과는 달리 꽃은 커녕 그저 초록잎의 나무들만 빼곡하였다. 파주는 서울보다 북쪽에 위치한 탓에 늦은 봄꽃이 핀다는 생각을 못한 탓이었다. 차라리 집 근처 공원을 한 번 더 다녀올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어쩌랴, 한 주쯤 후에 나무가 휘어져라 매달릴 꽃의 잔치를 마음으로만 그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계획을 바꾸어 우린 가까운 곳에 있는 임진각을 다녀오기로 했다. 파주 임진각 통일공원은 북한과 가장 인접한 지역 중 하나이다. 곤돌라를 타고 민간인 통제구역을 넘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하늘하늘 날리는 꽃의 감동이 아닌 격하고 아픔이 밀려오는 순간을 맞이했다. 불과 30분 전의 개화하지 않은 꽃에 대한 아쉬움은 이미 우리가 건너온 임진강에 흘리고 왔음을 알았다.

그곳 캠프 그리브스 박물관에서 나는 어느 학도병의 눈물 어린 편지를 본 것이다. 6.25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는 학도병들, 학생의 신분으로 군대에 들어가 겁에 질린 채로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는 총으로 우리의 동족을 죽이고 수류탄의 굉음으로 고막이 터진 소년의 얼굴을 만났다. 펴보지도 못하고 봉오리인 채로 사라진 어린 생명의 죽음을 만났다.

“어머니 왜 전쟁을 하여야 하나요?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어머니.” 실전에 참여한 학도병은 2만 7천 명 정도, 후방과 수복 지구에서 활동한 무려 20만 명의 젊은 아니 어리디 어린 학도병의 숨소리가 눈물과 두려움에 떠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함이 솟아났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우린 때로 잊고 산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돌아오는 길, 벚꽃은 만나지 못했으나 학도병들과 타국에서 숨진 연합군과 그리고 목숨을 내걸고 전장의 한복판에서 사진을 찍으며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여성 종군기자를 만났다. 그들은 모두 용감하고 멋진 승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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