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역임한 최재형선생은 ‘페치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나라를 잃은 국민들을 보살피고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이시다.

그는 1860년 함경북도에서 가난한 소작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아홉 살이 되던 해 가을 아버지를 따라 연해주에 위치한 러시아 최초의 한인마을, 지신허로 이주했다. 우연한 기회에 러시아 상선을 타게 된 선생은 6년 간 선원 생활을 하며 러시아어는 물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았고, 이후 상사(商社)에서 상인으로 일하며 성공 가도를 밟게 된다. ​러시아군에게 필요한 물자를 납품하며 부를 쌓은 최재형선생은 러시아어를 몰라 차별대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한인들을 대변했고, 한인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으며 러시아 관리들의 신뢰를 얻어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선생은 재산을 털어 러시아 도처에 한인학교를 설립했고, 러일전쟁 이후에는 안중근, 김기룡, 엄인섭, 이위종 등의 동지들과 함께 항일조직인 동의회를 조직해 군자금으로 1만 3천 루블이라는 거금을 쾌척하는 등 항일운동에도 힘썼다. ​또한 선생의 러시아 자택은 한인애국지사들의 아지트로도 사용되었는데,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를 준비하며 머물렀던 곳 역시 최재형선생의 노보키예프스키 집이었다.

​최재형선생은 이후에도 국민회, 권업회 등을 조직하고 대동공보, 대양보, 권업신문 등의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과 무장항일투쟁에 힘썼으 나, 1920년 4월 블라디보스톡을 점령한 일본군에 체포되어 안타깝게도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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