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896호

출처 : 주간조선
출처 : 주간조선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장난삼아 챗GPT에 이 문제를 물었더니, ‘지하철공사 영업 적자와 노인 복지 증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자 말씀으로 회피성 답변을 하였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선별적 복지에 선 것으로 보입니다만, 물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충분하면 보편적 복지의 대상으로 삼아도 무방하지만, 우리 형편은 이에 이르지 못했고 오히려 현행 정책이 서울특별시 등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득 수준과 나이 등을 고려하여 무임승차 비율을 줄이거나 할인해 주는 등 정책을 재설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전이라도 자진하여 요금을 내고 타시는 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후세대를 위하여."

여기까지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풍경이 있는 세상‘이라는 칼럼의 마무리를 발췌했다. 이를 읽다가 문득 지난 일이 생각났다. 결코 ‘자랑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65세가 되자 동사무소 옆 농협에서 복지카드를 받았으나 딱 하루만 혜택(?)을 누리고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 선별적 복지나 보편적 복지,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을 거부하거나 반대한다는 거대한 명분이 아니었다. 간단명료하게 내 나이를 거부하며 '청춘을 돌려다오'가 아니라 영원한 청춘의 열정으로 살고 싶었다. 단호한 애착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했었다. 청춘이 공짜가 아니었듯이....굳이 덧붙인다면 검정 자주색임에도 불구하고 경로석엔 가끔씩 얼룩이 있다. 뜬소문이겠지만 노인들의 요실금 때문이며 퀴퀴한 냄새까지 난다. 경로 우대 무임승차한다면 경로석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할 때 일반인들은 ‘띡’하는 단음절이지만 경로 우대 무임승차의 경우 “띡이띡”하고 세 음절이 크게 들린다. 그 소리는 마치 ‘고옹짜♪‘처럼 들린다. 그럴 때마다 앞뒤의 주위 사람들이 필자의 젊은 행색을 보며 위아래를 훑고 눈을 흘긴다. 모두가 분주하여 붙잡고 항변할 수도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빚같은 무상복지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달 평균 지하철 이용 금액이 15만원 정도이므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어느 날인가 필자의 폼생(生)폼사(死) 그 오기(傲氣)를 잘 알고 있는 지인은 차라리 공짜로 이동하시고 그 비용을 책값이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라는 추천도 있었다. 그러나 70세까지는 Tmoney Pay를 충전해 가며 지하철을 이용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음미할수록 나이를 잊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스스로 돈키호테가 아닌가 하는 착각으로 웃음이 났지만 그것은 아주 묘한 자존감으로 괜찮은 자축(自祝)이었다. 아무튼 작년부터는 눈 딱 감고 카드를 재발급 받아 무임승차 대열에 합류했다. 마음 내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생각할수록 어른다움보다는 '꼰대'임을 부인할 수 없었고 노인의 행색은 완연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공짜’소리를 듣는다는 것 개운하지는 않았던 차에 ‘후세대를 위하여‘ 노랫말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따지지 말고 '자진(自進)하여 요금을 내면 좋겠다'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님의 칼럼을 읽었던 것이다.

​초고령으로 가는 나이라서 망설임이 없을 수 없으나 '후세대를 위한다'는 것 이런 것도 애국이라면, 애국자가 될 용의가 있기에 티머니를 다시 충전하면서 ‘공짜’소리 나는 복지카드를 7년 전 청춘의 그날처럼 다시 장롱 속에 넣었다. 그리고 월트 디즈니의 말을 되새김하며 어쭙잖은 망설임을 물리쳤다. “나이 드는 것은 강제적이지만, 철이 드는 것은 선택적이다.“ 얼마나 더 철이 들어야 할까? 그것이 문제로다. 이 나이까지 인생이라는 화마(火魔)에 맞불을 놓으며 수많은 풍파(風波)를 겪을 만큼 겪을지라도 철이 든다는 것, 선택적 공짜는 아니었다. ​노인(老人)이라는 직업 어쩌다 갖게 되었지만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그러나 지금, 이라고 하는 이 유리한 위치에서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잘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인생을 조금 아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묻고 있다. 최후의 나를 향해 가는 늙음이란 무엇인가.

저작권자 © 시니어 타임스(Senior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