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매월 한 번씩 만나 점심을 나누는 4인 모임의 지인이 나를 대뜸 카톡 단체방에 초대했다. 맨발 걷기 모임 순천지역 단톡방인데 회원 수가 300명이 넘는 제법 큰 커뮤니티였다. 초대받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올해 겨울 날씨는 유난히 춥고 바람이 세차서 춥다는 핑계 하나로 맨발 걷기는 꿈도 꾸지 않고 지냈다. 그냥 단톡방에 무수히 오가는 글들, 대화, 자료들만 구경하고 지냈다. 맨발 걷기를 하면 암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치유가 되고 시니어 전립선 문제도 해소되면서 삶에 활기가 돋는다는데 나는 엄두 자체를 내지 않았다. 맨발걷기 효과의 원리는 우리 몸 속에 남아도는 활성산소를 접지로 흘려보냄으로써 상상할 수 없이 많은 건강 효과가 확연히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딱히 아픈 곳도 없고 고쳐야 할 절박한 건강상의 위기가 없으므로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 않아 요지부동이었다.

신기한 것은 맨발로 걸어도 발이 시럽지 않고 후끈거렸다.
신기한 것은 맨발로 걸어도 발이 시럽지 않고 후끈거렸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 이상하다. 근 한달에 걸쳐서 매일 그들의 수많은 대화 내용을 살펴보다가 나도 모르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나도 그리 좋다는 맨발걷기를 해 두면 노후내내 건강해져서 자식들 짐 되는 일은 없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어느새 한달 간 단톡방의 많은 글을 읽다 보니 이른바 메시지 중독에 따른 건전한 세뇌를 받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날씨가 풀린 듯한 날을 잡아서 평소 봐 두었던 순천만 습지 문학관 부근의 친환경 생태길에 모래가 섞인 흙길로 가서 30여 분 맨발로 걸어 봤다. 시작하는 김에 아내랑 같이 걷고 싶었지만 몇 가지 이유를 대면서 완곡히 거절했다.

1. 흙 속에 있는 세균과 맨발이 부딪히면 좋을 게 없다. 

2. 자신은 발바닥이 연약해서 분명코 발바닥이 찢어질 것이다. 

3. 이 추위 속에 그런 걸 하는 것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4. 젊은이들이 보면 비웃을 것이다.

5. 발에 습진이 생기면 누가 책임지나요? 등등 

제일 큰 이유는 자기는 "그냥 하기 싫다"였다. 나아가 끈질기게 조르고 성취해내는 내 성미를 알기에 못을 하나 단단히 박아 둔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가 하기 싫어하면 강요하지 마세요!” 그래서 혼자 맨발로 추위를 무릅쓰고 용감하게 무작정 걸어 봤다.

막상 맨발 걷기를 해 보니 발바닥이 자극받는데 지압 받는 그것처럼 시원하고 흙과의 맨발 접촉시 흙이 내 발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온 몸에 무슨 감전이라도 되는 것 같은 짜릿짜릿함이 온몸에 퍼져서 도리어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었다. 비로소 나는 맨발 걷기가 '해볼 만한 건강 운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며칠 간의 외국 여행이 있어서 한동안 못 하다가 지난 주말 귀국한 뒤에 푹쉬어가며 몸을 추스른 다음, 아예 내가 사는 동네 뒤쪽에 있는 난봉산(鸞鳳山) 속으로 갔다. 난봉산은 전라남도 순천시 옥천동,행동,매곡동,석현동,삼거동에 걸쳐 자리 잡은 해발 547m 높이의 산으로 도립공원 조계산 줄기의 지류이다. 그곳은 20년 전에 내가 거의 매일 등산하던 길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관절보호를 위해 등산을 지양하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중단했던 곳이다. 산을 올라가 정상 아래 해발 450m 쯤 되는 곳에 참샘위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부터는 평지 같은 오솔길이 3km 남짓 뻗어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왕복하면 6km이니 맨발로 걷기에 딱 좋은 곳이다. 실제로 시간을 재가면서 걸어보니 매산공원 평지에서 참샘 약수터까지 1.5km, 40분이 소요되고, 참샘 약수터에서 삼거리까지는 15분이 걸린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오솔길을 맨발로 걸어서 와룡~석현동 임도(林道)까지 걸으니 75분이 소요되었다.

맨발 걷기를 시도하는 나를 위해 마련된 듯한 오솔길, 이틀 전에 내린 비로 젖어서 이제 마르기 시작한 흙길이 왜 그리도 포근하고 아늑한지….겨울 숲 속이라 한적하고 너무 조용한데다 바람까지 감미롭게 불어주어 상쾌한 공기에 취한 듯이 걸었다. 그래서인지 세 시간을 넘게 걸었어도 도무지 피곤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맨발 걷기 명소 하나를 발굴해 내었으니 금년에는 주 1회 정도만 걷기로 하고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소득이라면 순천의 명산 난봉산 속에 고스란히 간직된 맨발 걷기 명소를 주 1회 정도 가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분명히 아내도 끌어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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