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890호

입춘 오신반-캡처 사진
입춘 오신반-캡처 사진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sms 시냇물소리“ 

이해인 수녀의 ‘봄 일기-입춘에’라는 詩다. 시상(詩想)의 전개나 사용한 단어와 메시지는 너무나 쉽다. 길고 길었던 겨울(冬)이 위의 시를 읽을 수 있다면 우리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시나브로 멀어져 갈 것이다. 오늘은 일년 중 가장 희망적인 날이라는 '입춘(立春)'이다. 일춘화기 만문미(一春和氣 滿門楣). 봄날의 따사로운 화기가 문밖에 가득하다.

“땅 위에 사내가 우뚝 섰으니 설 立이다 풀이 오르며 해가 따뜻해지니 봄 春이다 돼지머리를 올리며 형통하길 비니 형(亨)이다 선비 입에서 나온 말은 상서로우니 길(吉)하다 입춘을 맞아 그런 뜻과 느낌을 살려“

박기철 인문생태 시(詩) ‘입춘의 글자’ 전문이다. 立과 春의 글자를 파자(破字)한다면 ‘립(立)’字는 부수글자로 옛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에는 땅(⎯) 위에 팔과 다리fmf 벌리고 서 있는 사람(大)의 모습이 모여 ‘서다(立)’라는 뜻이 된 회의자(會意字)이다. 그리고 사람이 서 있는 자세는 다른 행동으로 바로 바꿀 수 있으므로 ‘곧, 즉시, 이루어지다, 나타나다(立)’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아니라 곧, 즉시 봄이 온다는 명확한 암시(暗示)다. 봄 춘(春)은 ‘움직일 준’으로도 읽으며 젊음의 상징이다.

“옥호매춘(玉壺買春), 옥 병에 술을 사고, 상춘모옥(賞雨茅屋), 초가집에서 비 구경한다.“ 윗글의 표현처럼 春은 술(酒)로 읽힌다. ​필자(筆者)의 경우 立春 즈음에 마시는 술이 특별히 맛있고 상큼하다. 고도(春)를 기다리는 혼술, 그런 춘정(春情)이라면 취(醉)함이 더디다.

​중국의 전통의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등 여러 문헌에서 입춘 기간을 5일 단위로 삼후(三後)로 구분하고, 초후(初候)에는 동쪽 바람이 불어 얼었던 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동면(冬眠)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에서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다. 마치 독립영화 예고편처럼 봄의 화면이 생생하다. 立春의 압박으로 추웠던 겨울이 사라지듯 '아홉 차리'라는 미풍양속(美風良俗)도 우리 곁에서 사라졌지만 다시 소환해 본다면 선비들은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부인들은 빨래를 아홉 번을 하면서 자신이 감당하는 일들을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풍속(風俗)이 있었다. 샤머니즘이나 무속신앙(巫俗信仰)에서 아홉(九)이라는 숫자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수를 의미한다. 중도(中途)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무튼 수효의 끝 아홉(9)은 立春의 새김이었다.

​전통적으로 立春에는 오신채(五辛菜)를 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승려들이 금기시하는 五辛菜는 파, 마늘, 달래, 부추, 무릇 등 다섯 가지의 매운 나물을 말하며, 한 해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24절기의 첫 절기에 맵고 쓴 五辛菜를 먹음으로써 삶의 쓴맛을 미리 깨우치고 참을성을 키운다는 교훈이 들어 있는 풍속이다. 즐기며 지칠 줄 모른다는 ‘단(甘)’맛보다 먼저 고신미(苦辛味), 맵고 쓴맛으로 시작하여 두렵게 다가오는 힘든 세상에서 인내(忍耐)를 키우겠다는 ‘견딤(耐)의 미학(味學)‘, 요즘말로 ‘중꺾마‘가 아닌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한 옛 성현들의 지혜는 놀랍다. 그렇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아홉 번 또 아홉 번씩이라도 견뎌 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렇구나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소리와 五辛菜를 술안주 삼고 빈 잔에 어른거리는 한냉(寒冷)의 그림자를 지우며 문밖의 봄을 만나고 싶다. 청춘(靑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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