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888호

생뚱맞고 새삼스럽기까지 하지만 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 토끼의 해다. 아쉬운 송년(送年)의 취기(醉氣) 아직 남아 있고, 뿐만 아니라 설렘의 영신(迎新)을 3주(週)까지 보내고 나서야 토끼가 보이기 시작했다. 십이지(十二支) 중 넷째 동물 토끼를 뜻하는 한자(漢字) ‘묘(卯)’는 '왕성하다'는 의미를 포함 문을 활짝 연(開) 형상으로 생동감이 있다. 토끼의 다산(多産)과 무관하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건강’과 ‘재물’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도 있겠다는 의욕(意慾)은 여전하다.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1월이 아주 드문 일이지만, 1월(재뉴어리.January)의 어원(語原)이 된 로마의 신(神) ‘야누스(Janus)’는 머리 하나에 얼굴이 둘, 하나는 지나 온 세월을 돌아보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새날을 향해 있다. 야누스는 모든 처음(初)과 시작(始)을 관장(管掌)하지만 과도기(過渡期)의 神이다. 神의 활동은 新正에서 舊正까지다. 새해 첫 달을 맞이하면 과거와 다르게 살아 보려고 새로운 결심을 계획하고 다짐하기도 하지만 사실 하루 이틀 만에 변신(變身)할 수는 없다. 계획과 목표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고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굳게 다짐한 만큼의 새사람이 될 수는 없기에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過渡期를 통과(通過)해야 확정된다. 대개 설날 이후다.

​내일이 설날이다. 설날 음식은 단연코 떡국이다. 예전만큼은 아닐지라도 ‘떡국’이라는 단어가 정감(情感)이 남아 있다. 만 나이로 셈법이 달라지는 올해의 떡국 맛은 어떨까? 궁금하지만 떡국은 나이였다. 설날 떡국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뜻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의미다. 변화의 시작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어떤 사람이 우연히 토끼 한 마리가 나무에 부딪혀 죽는 것을 바로 앞에서 목격(目擊)했다. 그 후로 매일 같이 그 나무 옆에 앉아 또 다른 토끼가 부딪혀 죽기를 기다렸다.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59쪽에 나오는 이야기로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출처다. 우연히 벌어진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관계(因果關係)로 변형시킨 경우이기는 하지만 교훈이 없지는 않다. 지금 우리는 한가하게 나무 옆에 앉아 토끼를 기다리기에는 앞날이 밤처럼 어둡다. 불을 밝히든가 새벽으로 달려가든가 뭐라도 해야 한다.

​토끼가 주인공인 별주부전(鱉主簿傳)에서는 자라의 꾐에 빠져 용왕의 병을 낫게 하는 간 때문에 곤혹을 치른다. 물론 잡아먹힐 순간에 “간을 밖에 놓고 왔다“는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살아남았다. 절박한 위기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긍정의 동물로 기억된다. 사는 게 팍팍하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만나게 될 때, 낯선 용궁 깊은 바다속에서 간 때문에 목숨을 빼앗길 상황이었음에도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며 침착하고 유머스러하게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危機)를 모면했던 토끼의 날렵한 지혜를 닮아야 한다.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토끼 효과(The Rabbit Effect)' 실험결과이지만 "다정함’이 심장 건강을 좋게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레시피도 모르는 맛있는 떡국만 먹다가 망팔(望八)까지 바라보는 인생을 살다 보니 진짜 강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늘 화합하는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이지 몸이 크고 힘센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보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어떤 위기라도 버티고 견디며 잘 지켜나가는 사람이 훨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설날을 앞두고 작고 귀여워 보이지만 특유의 지혜와 강단을 발휘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기를 모면하는 토끼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며 ‘지금 있는 자리에서도 새해맞이 할 수 있다‘는 정연복 시인(詩人)의 ‘새해맞이‘라는 시(詩)를 달큼한 맛을 느끼며 오물오물 떡국을 먹듯이 음미(吟味)해본다.

마음의 옷깃

조심조심 여미고서

새롭고 밝은 마음 하나

굳게 먹으며

이 좋은 마음

올 한 해 내내

지켜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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