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토요편지 886호

제야(除夜)의 종소리 그 오묘한 여운(餘韻)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새해가 찾아오면 주고받는 덕담(德談)이나 신년 운세가 궁금해진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오래된 풍속(風俗)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世態)는 듣고 싶은 신년 德談을 질문(質問)하면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매우 건조한 응답(應答)이 대세(大勢)라고 한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묘(癸卯), 즉 2023년은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이 1월 달에 함께 있어 아마도 한 달 동안은 "어떤 꿈이 이루어지고 어떤 상상이 현실이 될까?" 기대하고 격려하는 德談이나 새해 인사가 바닥에 엎질러진 물처럼 테두리를 잃고 확산(擴散)될 것이다. 3년 째 전염병에 지쳐 있기에 더욱 그렇다.

“늘 빈손일지라도 그 무엇에 꺾이지 않고 살만큼 살았음에도 더 갖고 더 누리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버리지 못하니 세상사는 게 가볍지 않구려. 가는 세월이 무거우니까 모자도 벗자.“ 새해 원단(元旦)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필자(筆者)의 화두(話頭)였다. 색다르고 무겁기는 하지만 기실 자성(自省)이었고 자책(自責)이었다. "올 한 해 그대 삶의 자취에서, 또 글밭(토요편지)에서도 형통하시기를 빕니다. 형통(亨通)이란 ‘생각만 해도 이루어진다는 은혜‘입니다.“ 실향민의 가족 이야기 <아버지 배 침대> 저자이자 독실한 크리스천(Christian) 박순(筆名) 작가로부터 새해 둘 째날 받은 애틋하고 정겨운 덕담으로 격(格:Class)을 느끼고 차(差:Difference)가 보이는 차분한 격려와 따뜻한 당부, 담백하고도 향기롭다. SNS라는 구천을 떠도는 엇비슷한 각종 이모티콘,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진부한 德談이나 식상한 안부(安否)보다는 평소 생각을 담은 글이나 짧은 시(詩) 한 편이 훨씬 더 근사하다. 상대에게는 위로와 격려, 자신에게는 각오와 다짐. 그 덕담 프레임은 대부분 긍정(肯定)이지만 달력이 바뀌는 新正에는 '희망사항'이 많다면 고유 명절인 설날(舊正)에는 '의미와 재미'가 함축된 말들이 은근하고 정겹다. 그렇다면 최계락 시인(詩人)의 <새해엔>이라는 詩는 새로운 다짐을 하는 新正에 안성맞춤이다. (원문과 다르게 배열했음)

무거운 얼음장 밑을

그래도 냇물은 맑게 흐른다.

 

​그렇다

찬바람을

가슴으로 받고 서서

오히려 소나무는 정정한 것을

 

새해엔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어둡고 답답한 땅 속

깊은 곳에서도 지금 쯤

새 봄의 기쁨을 위해

제 손으로

목숨을 가꾸고 있을 꽃씨.

 

그렇다  

언젠가 이른 아침을

뜨락에 쏟아지던

그 눈부신 햇살처럼

 

​나도

새해엔 그렇게 살아야지.

눈부신 햇살처럼 살고 싶다는 詩人의 간절한 소망이지만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한 해를 시작하는 소통으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詩를 인용(引用)하여 대자연의 섭리(攝理)에 어긋남 없이 따라야 한다는 순천자(順天者)의 여유로움이 몹시 정겹다. 지난 연말 즈음에 지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새해 맞이 인사말이나 덕담을 생각하다가 시공간을 초월한 글을 읽고 저장해 놓았다.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하는 원제 스님의 저서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는 275쪽에 있다. 꿋꿋하고 한결같은 우주적 삶을 깨우쳐 주는 멋스러운 德談은 사람 사는 의미와 재미의 질문(質問)이 된다. 2023년 벽두(劈頭)에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도입부 생략)

가도 가도 본래 자리요.

이르고 이르러도

출발한 그 자리인 것을

‘행행본처 지지발처(行行本處 至至發處)‘

이 흔들릴 바 없는

본래(本來)의 처음 자리가

무심(無心)입니다. ​

 

비록 새해라고 하지만,

어제 뜬 해나

내일 뜨는 해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새해 인사도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을 것입니다.

 

​새해에도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세요.

​‘行行本處 至至發處 뛰어보았자 겨우 부처님 손바닥 악착스럽게 움켜쥐어 봐야 다 소용 없으니, 새해에도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세요.‘ 중용지위덕야(中庸之爲德也), 균형 잡힌 삶이라야 행복하다는 가르침이 아닌가. ‘적당함’의 묘미(妙味)는 어리석은 인간의 성냄과 탐욕(貪慾)을 관통(貫通)하고 타종(打鐘) 이후의 종소리처럼 온 몸으로 스며든다. 세상만사(世上萬事)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정곡(正鵠)을 꿰뚫어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생로병사(生老病死)까지 아우르는 새해 德談이 의미심장(意味深長)하고 매력적이다. 눈부신 햇살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을 되새기며 모자까지 벗어 던지고 가까스로 붙잡아 둔 無心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노라니 질문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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