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자다. 누가 뭐라든

사람들은 돈을 기준으로 부자를 논한다. 갑부, 재벌 그리고 억만장자, 백만장자를 부자들 그룹에 넣는다. 틀렸다. 그 기준이 틀린 것이 아니라 부자에 대한 개념에서 틀린 기준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부자의 기준을 말할 때 어떤 사람이 1원짜리 동전 하나를 길 바닥에 두고 그 1원을 보고 절을 하면 그 돈을 주겠다라고 했을 때 그 돈을 향해 절을 하는 사람이 부자의 기본에 들어 간 사람이라 했다. 웃지마라, 부자가 되려면 돈에 대한 애착이 바로 이 정도여야 한단다. "돈 1센트에 웃는 자, 돈 1센트에 우는 날이 있다"는 서양 속담도 있다. 적어도 부자라는 개념을 말할 때 이 정도 이야기로 얼버무리는 것을 두고 우리는 바로 하수라고 한다. 하수라는 말은 천박하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 부자이고 부자가 되었다면 그는 전혀 부자가 아닌 것이다, 고수부자들에게는.....

​노자는 원래 이름이 이이(李耳)였다. 고 김성동선생은 이를 두고 "귀 있는 자는 들어보라!" 라는 뜻에서 그리 지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자가 그에게 기러기 한 마리를 안고 찾았을 때 공자 37세, 노자 53세였다던가. 공자는 쓰러져 가는 주나라를 살려 보겠다고 동분서주하던 중에 노자를 찾았는데, 예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에게 노자 왈 "꾸미지 않고 수수하게 사는 것이오" 라 했더란다. 김성동이 쓴 '천자문'에서 얻어 들은 이야기이다.

​부자, 뭘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자, 그런데 천하를 가진 자가 부자이다. 여기서 천하는 보이지 않는 것의 상징이다. 보이는 부자는 하수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많이 가진 자가 고수부자라는 이야기이다. 노자의 "꾸미지 않고 수수하게 사는 것이오"라는 말에서 고수부자의 내음이 진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자이다. 나는 1,200명이 넘는 낙농가들 머리와 가슴에 "목장형 유가공"이라는 부(영혼, 말)를 심어 드렸다. 식약처에 품목신고를 하고 영업 중인 전국 130여개의 가동 중인 목장형 유가공장 중에 나를 통해 교육을 받고 그 교육에 따라 목장유가공장을 창업한 분들에게 가서 그분들의 '영혼'에게 한번 물어 보라. 내가 심어 드렸던 보배로운 말들이 튀어 나올 것이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힘이 있다. 그 말들이 현실이 되는 힘이었다. 그 말들이 그분들을 실제에 옮기도록 움직여 버렸다. 그분들은 죽는 날까지 내가 심어드린 영혼, 말들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그분들이 내 영혼, 내 말들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줄 것이다. 아니 전하지 않아도 어느새 유전자가 되어 평소 그분들의 행동과 실제를 통해 후계자들에게 어김없이 전수되고 유전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영구한 부자이다. 내가 죽어도 여전히 세상에 살아 꿈틀대는 돈보다 귀한 것,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 돈으로 개념되지 못하는 것을 나 혼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1,200명 플러스(+) 알파에 이르도록 함께 갖고 있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금년 1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내가 바로 이런 부자인 것을 돌다리 두드리듯 두드리고 확인하고 확신에 이르게 하는 현장을 누비고 즐기고 누린 한 해였다. 아, 아, 그래서 나는 행복한 부자, 확실한 부자이다. 그 누가 이런 나에게 뭐라고 하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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