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면 밥상을 차려야 한다. 남편이 아직 현역이기에 도시락을 싸야 해서 더욱 아침을 거를 수가 없다. 늘 먹는 반찬을 다시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야 하는 남편은 삼시 세끼를 같은 메뉴로 먹지만 아직 물린다 싫다는 반응이 없으니 좋다. 어제 두부짜글이 하고 남은 두부 반모를 지져서 갈치속젓을 올려 먹게 했다. 너무 크게 전을 부쳐 남은 감자전도 데워서 상에 올렸다. 어제 만든 우거지가 조금 질기다는 말을 해서 조금 덜 물렀구나 생각되어 다시 불에 올릴 생각이다. 나이가 드니 내 치아는 자꾸 탈이 나고 임플란트로 끼운 새 치아는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버거워 한다. 하긴 나이 먹으면 소화력도 떨어지니 조금은 물렁한 느낌의 음식이 좋을 수 있다. "아, 남편도 늙어가는구나"가 실감 난다.

계절에 따라 선호하게 되고 찾아지는 음식이 있다. 나에게는 간장 비빔밥이다. 하얀 쌀밥 위에 조그맣게 구멍을 만들고 그 속에 작은 버터 한 개를 넣고 다시 밥으로 그것을 메운 다음 간장 한 수저 살살 밥 위에 뿌리고 비벼면 잘 녹은 버터의 향긋함과 간장의 짭조름한 향이 올라오고 군침이 꿀꺽 비비는 동안 목젖을 강타한다. 준비한 마른 김에 버터향 폴폴 풍기는 밥 한숟갈 올리고 김치나 다른 반찬을 한 가지씩 올려 먹으면 그게 바로 밥도둑이다. 어릴 때는 버터도 귀해서 마가린으로 비벼 먹었고 그것도 없으면 참기름 넉넉히 넣고 간장 대신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으면 왜 그리 맛있던지.....그제로 김이 바닥이 나서 다시 사러 가야 한다. 버터 간장밥은 김을 다시 사오면 먹는 거로 하고 오늘은 무슨 일이 없나 달력을 확인한다.

12월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모임에서 송년을 보내자고 연락이 온다. 오늘은 환경사진반 송년회이고 내일은 고교 동창 송년회가 있다고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 다음 주 월, 화는 가족여행이 있고 수요일엔 또 다른 사진반 송년회이다. 그 다음은 북경에서 한 동네에 모여살던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나보게 되고, 평소에 자주 얼굴 보고 살아야 하는데 12월만 되면 불현듯이 연락 와서 얼굴 보자고 한다. 그래, 그래도 볼 수 있는 얼굴이 있다는 게 어디냐. 매년 수첩에서 한두 사람 사라지는데 새롭게 올라오는 사람은 없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싶다고 나오라 하면 얼른 나가야겠다. 열이면 열 다 정말 소중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소중한 사람일 수가 있지 않을까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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