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아침입니다. 첼로가 그리운 날입니다. 미샤 마이스키의 '자크린의 눈물'을 듣고 싶군요. 한 방울, 두 방울 내리어서 곧 우리의 텃밭을 충분히 적시리라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푸근한지요. 초여름에 시작한 텃밭이 어느새 두 계절을 지나고 있군요.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입니다. 여기저기 붉은색으로 표시해 놓은 것을 보니 아차, 하는 순간에 새해를 맞을 것 같군요.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A good year'입니다 극장엔 `어느 멋진 순간'이라 했더군요. 먼저 영화 이야기해 드릴게요.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돈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주인공은 혼잡하고 바쁜 도시의 삶에서 때로는 비열한 방법도 써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지요. 어느 날 자신을 친자식처럼 사랑했던 삼촌이 그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포도농장이 딸린 집을 되도록 빨리 처분하기 위해 시골로 달려갑니다. 그에게 시간은 곧 돈이니까요. 하지만 결국 “프로방스”의 아름답고 따스한 햇살 아래 삶의 여유를 보게 되고, 무엇보다 이기적이던 자신을 떠나 그에게 남은 생의 의미가 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인테리어에서 프로방스풍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그것은 남유럽이나 지중해 같은 따스한 지역의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약간은 자유롭고, 시골스러움을 지니지요. 그래서 자연 소재와 강렬한 색채와의 조화를 이루기도 한답니다. 프로방스 지방의 배경이 눈에 그려지시는지요? 영화를 보며 내내 저는 그대와 다녀왔던 `나파밸리`를 생각했습니다. 함께 음미한 핑크빛 머금은 과일향 나던 가벼운 와인 보졸레를 그대의 미소와 함께 기억합니다.

영화 속에서 농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포도밭을 가꾸며 어째서 노래를 부르는지 모를 거라고요. 식물을 가꾸는데 햇빛과 적당량의 비가 내리면 족하련만 왜 그는 노래를 부른 것일까요? 그는 그의 한여름 노래 끝에 포도가 열매로 보답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 농부는 순례자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미래의 열매를 맺기 위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요. 농부는 인생이 성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때로 넘어지고 가슴에 얹힌 돌덩이를 치우지 못해 아파하기도 하잖아요. 자신의 몫이라고 자신의 길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걷기도 하지요.

​헌데 말입니다. 인생길 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랍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나를 비워야 합니다. 내가 낮아져야 합니다. 친구여! 어젠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멋진 순간이었고요. 문득 쳐다본 하늘에 반쯤 걸린 달이 제게 응원을 보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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