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등대 그리고 등대지기, 이 세 몸은 함께하는 일체인 것만 같다. 머리 몸통 다리처럼....

등대지기는 내가 등대를 보기 전부터 등대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가도 알수 없는 내륙지방의 아이였을 때부터 동요를 통하여 동화를 통하여 먼저 그 착하고 아름다움을 알았다. 바다가 위험과 인간의 고난을 품고 있는 그러면서도 생명을 있게 해주는 생명 에너지원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실제적인 의미를 전혀 모르면서 그렇게 등대지기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이 구해내는 많은 생명들을 희미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등대는 실물이기도 하고 환상물이기도 했다.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내 어리고 경험 부족한 눈에는 바다는 무한 크고 등대는 너무나 작아보여 초라했다. 거대함을 거쳐 온 뱃사람들이 이 작은 등대를 보면서 안도의 큰 숨을 들이키고 흙냄새 미리 맡는다는 게 영 어울리지도 않는다 싶었다. 그때는 예술이란 걸 모르면서 어른들은 그렇게 많은 부풀리는 이야기로 아이들의 관심을 모우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등대는 이런저런 존재란 걸 알게 되었음에도 나는 섬살이에서 등대에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섬의 역사가 길고 인간의 처음이 어쩌면 바다일 수도 있다는 튼튼하지 못하는 이론도 내 머리를 스쳐갔으니 등대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한 이웃이라는 미적지근한 생각이었는데 이번 손님은 해안선을 돌자는 제안을 하면서 곳곳의 등대에 대하여 관심이 컸다.

​옆 사람의 질문에 나는 바람처럼 흘러 읽었던 서귀포 어느 포구의 흰등대 빨간등대의 부부이야기도 뚜렷하지 않게 기억이 났다. 재일교포였던 그 분들의 피땀 냄새가 아직도 여향으로 남아있을 고향에 기증한 그 부부의 등대가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는 모른다. 낯선 나라 낯선 문화에서 이룬 경제력으로 고향에 등대를 세운 분의 마음에서 등대가 얼마나 바다 사람들과 가까우면서 생명의 친구였던가를 생각하니 제주도 살면서 등대의 이야기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보지 못했음이 괜히 내가 제주도에 산 건가 하는 자책을 하게 한다.

​보는 것보다 아는 게 먼저라든가?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론으로는. 요즘은 나의 시선을 단지 몇 초라도 더 지나가는 등대에 보내고 있다. 그 심리가 발견한 글이라고 생각된다. 은퇴 생활을 제주도에서 하시는 분의 글을 읽었다. 그 분은 등대에 대한 역사를 참 많이 그 글에서 알려주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등대를 비롯하여 우리 근대사와 연관된 등대이야기도 그 글에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아주 간단하고 기본적인데 내가 지금까지 왜 몰랐던가 하는 건 흰등대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라는 안내이고 빨간등대는 왼쪽으로 들어가라는 안내라는 말이었다.

​제주도분들과의 모임에서다. 제주도분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의 늦은 정보가 우습지 않나 하는 태도로 말했다. 근데 그 분도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신기해 하고 새로운 지식이라고 좋아했다. 등잔밑은 늘 가까운 사람에게는 살짝 숨기는 유모어를 하는 습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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